인평대군 묘 및 신도비
인평대군 묘 및 신도비 Tomb and Stele of Prince Inp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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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인평대군 묘 및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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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and Stele of Prince Inpyeong |
한자 | 麟坪大君 墓 및 神道碑 |
주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46-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30호 |
지정(등록)일 | 1992년 6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인평대군 묘 및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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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인평대군은 인조의 셋째 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이다. 그의 묘는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위치하고, 부인 오씨(吳氏)와 합장인 그의 묘는 사각의 곡장 안에 원형의 호석을 둘렀다. 봉분의 전면에는 묘비, 향로석, 상석, 혼유석, 장명등이 있다. 그 전면 좌우에는 동자와 군인 모양의 돌이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 망주석 뒤에는 비의 몸체가 없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이 있어 또 다른 묘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묘역 뒤 오늘쪽에 산신제를 지내는 석물과 오른쪽 아래에 편평한 돌을 깔아 놓았다.
신도비는 효종 9년(1658)에 건립되었으며, 거북이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비석의 머리부분은 웅장하고 화려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신도비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비문은 왕명을 받아 인조 때에 영의정을 지낸 이경석이 지었고 비문의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전액은 오정일이 했다.
인평대군 묘는 본래 경기도 광주 고읍에 있었으나 숙종 19년(1693) 8월에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국문 수정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과 부인 복천부부인(福川府夫人) 오씨의 합장묘와 인평대군의 생애와 업적이 기록된 신도비이다.
인평대군은 제16대 왕 인조(재위 1623~1649)의 셋째 아들이자 제17대 왕 효종(재위 1649~1659)의 동생이다. 시, 서예, 그림에 능하고 학문이 뛰어났다. 병자호란 이후인 1640년에는 청나라의 요구로 인질이 되어 중국 심양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으며, 1650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신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36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요절했다.
무덤 앞에는 묘비, 혼유석,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있고, 그 앞의 좌우에는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한 쌍씩 자리하였다.
무덤의 정면 아래쪽에는 1658년에 세워진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인조 때에 영의정을 지낸 이경석이 왕명을 받아 지었고, 오준과 오정일이 글씨를 썼다.
묘와 신도비는 본래 지금의 경기도 하남 지역에 있었으나, 각각 1693년과 1694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묘역의 남동쪽에는 인평대군 치제문비(시도유형문화재 제75호)가 있다.
영문
Tomb and Stele of Prince Inpyeong
This is the tomb of Prince Inpyeong (1622-1658) and his wife Lady O and a stele that records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the prince.
Prince Inpyeong was the third son of the 16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King Injo (r. 1623-1649), and a younger brother of King Hyojong (r. 1649-1659). He is known to have been very skillful at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In 1640, after the Manchu invasion of 1636, he was sent as a hostage to Shenyang upon China’s request, but was released the following year. Beginning in 1650, he was sent to China as an official envoy four times. However, he became ill and died at the young age of 36.
In front of the tomb mound, in which both the prince and his wife are interred, are a tombstone, stone spirit seat, stone table, stone incense table, stone lantern, two stone statues of children, two stone pillars, and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t the entrance to the tomb area is a stele erected in 1658. Its inscription was composed upon his brother King Hyojong’s order by the chief state councilor Yi Gyeong-seok and calligraphed by O Jun and O Jeong-il, scholars of the mid-Joseon period.
The tomb and stele were originally located in the Hanam area of Gyeonggi-do, but they were moved here in 1693 and 1694, respectively.
To the southeast of the tomb area are two royal memorial steles with epitaphs composed by five Korean kings in honor of Prince Inpyeong (Gyeonggi-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