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쌍릉
익산 쌍릉 Twin Tombs, Iks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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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익산 쌍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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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win Tombs, Iksan |
한자 | 益山 雙陵 |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 산55번지 산56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87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고대 |
시대 | 백제 |
수량/면적 | 13,884㎡ |
웹사이트 | 익산 쌍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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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19
익산쌍릉은 대왕릉, 소왕릉이라 부르는 2기의 고분이 180여m의 떨어져 조성되어 있는 백제 능묘유적이다.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谷井齊一)의 약식조사 결과, 대왕릉에서는 관고리가 달린 목관 일부와 관못, 사발형 토기 1점, 옥 장신구, 치아 등이 나왔고, 소왕릉에서는 금동제 관장식, 관못 등이 나왔다. 무덤의 형식은 백제 사비시기의 부여 왕릉과 같고, 대왕릉의 규모는 부여의 왕릉(동하총)보다도 크며, 목관의 자재는 공주 무령왕릉에서도 나왔던 금송(金松, こうやまき[高野槇])인 것으로 확인되어, 백제 왕릉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로부터 100년만에 다시 조사한 결과, 대왕릉과 소왕릉 모두 정교하게 다듬은 화강암 판석 10매를 짜 맞추어 무덤방을 만든 후, 방의 중앙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관대를 놓았고, 입구는 2매의 판석으로 막았다. 판축기법을 이용하여 능의 봉분을 만들었고, 10~20m에 이르는 무덤 길(墓道)도 확인되었다.
특히 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을 분석한 결과, 7세기 중반에 사망한 50대 이후의 노년 남성인 것으로 확인되어, 이 왕릉의 주인은 600년~641년까지 재위하였던 백제 제30대 무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왕릉의 무덤방은 길이 4.02m, 너비 1.75m, 높이 2.26m이며, 소왕릉은 길이 3.44m, 너비 1.27m, 높이 1.75m의 규모를 가진 굴식돌방무덤으로서, 7세기 전반, 백제 왕릉의 축조 방법과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21
굴식돌방무덤 2기가 남북으로 180m 거리에 있어 쌍릉이라고 불렸으며, 백제 30대 무왕과 왕비의 능으로 전한다. 쌍릉은 『고려사』에 후조선(後朝鮮) 무강왕(武康王)과 왕비의 무덤으로, ‘말통대왕릉’이라 부른다고 쓰여 있다.
봉분이 큰 북쪽 것을 대왕릉, 작은 남쪽 것을 소왕릉이라고 한다. 모두 둥그런 봉분을 쌓았으며, 무덤방은 화강암을 매끈하게 다듬어서 백제왕릉으로 알려진 부여 능산리 고분들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1917년 일본인이 발굴하였는데, 이미 도굴되었지만 썩고 남은 목관과 토기 등을 수습하였으며, 이것들은 지금 국립익산박물관에 있다. 2017년과 2019년에 다시 발굴조사하였는데, 대왕릉 무덤방에 있던 인골은 7세기 전반에 사망한 50세 이상의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따라서 쌍릉은 641년에 죽은 백제 무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으며, 미륵사, 왕궁평성 등 무왕의 익산 경영과 직접 관련되는 무덤으로 추정한다.
영문
- Twin Tombs, Iksan
2019
These two stone chamber tombs with corridors date to the 7th century during the Baekje period (18 BCE-660 CE). The tombs are located about 180 m apart from one another. One is slightly larger than the other.
Since the first survey carried out on these tombs in 1917, the twin tombs have been regarded as royal tombs of the Baekje kingdom. Their overall structures are similar to those of Baekje’s royal tombs in Buyeo, and the wooden coffins in these tombs were made with the same kind of timber as the Tomb of King Muryeong (r. 501-523) in Gongju. From the larger tomb, coffin nails, a pottery bowl, jade ornaments and human teeth were excavated, and from the smaller tomb, gilt-bronze diadem ornaments and coffin nails were excavated.
From 2017 to 2019, an extensive excavation survey was conducted on these tombs. Based on new discoveries from this survey, the owner of the larger tomb is presumed to have been King Mu (462-523, r. 600-641), the 30th ruler of the Baekje kingdom. A wooden chest containing human bones were found inside the main chamber, which based on analysis are presumed to belong to a male who died in the mid-7th century in his 50s or older.
The main chamber of the larger tomb measures 4.02 m in length, 1.75 m in width, and 2.26 m in height. The main chamber of the smaller tomb measures 3.44 m in length, 1.27 m in width, and 1.75 m in height.
2021
These two burial mounds are presumed to be royal tombs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dating to the 7th century. Located about 180 m apart on a mountain ridge, the two tombs are known as Ssangneung, meaning “Twin Tombs,” in Korean. The larger burial mound to the north is presumed to have belonged to a king, while the smaller one to the south is presumed to have belonged to his queen. Below each burial mound is a stone chamber tomb made of smoothly cut granite.
These tombs were first excavated by Japanese historians in 1917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t the time, the tombs had already been robbed, and the few remains, including decaying coffins, earthenware, jade ornaments, teeth, and coffin nails, were retrieved. The tombs were surveyed again in 2017 and 2019. During these excavations, human bones were discovered in the larger burial mound. These bones belonged to a male in his 50s or later who died in the early 7th century, which suggests that the tombs belong to King Mu (r. 600-641), the 30th ruler of the Baekje kingdom, and his wife.
영문 해설 내용
2019
이곳의 두 굴식돌방무덤은 백제시기인 7세기에 조성된 것이다. 대왕릉의 무덤방은 길이 4.02m, 너비 1.75m, 높이 2.26m이며, 남서쪽으로 약 18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왕릉의 무덤방은 길이 3.44m, 너비 1.27m, 높이 1.75m이다.
1917년에 처음 조사된 이후로 이 무덤들은 백제 왕릉으로 추정되어 왔다. 무덤의 전반적인 형식이 부여에 있는 백제 왕릉과 유사하고, 목관의 자재가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밖에도 대왕릉에서는 관못, 사발형 토기, 옥장신구, 치아 등이 나왔고, 소왕릉에서는 금동제 관장식과 관못 등이 나왔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대대적인 발굴조사 결과, 대왕릉의 주인은 백제 제30대 무왕(462-523, 재위 600-641)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왕릉의 무덤방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발견되었는데, 인골을 분석한 결과 7세기 중반에 사망한 50대 이후의 노년 남성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1
이곳의 굴식돌방무덤 2기는 7세기에 조성된 백제의 왕릉인 것으로 추정된다. 구릉 정상부에 두 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180m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쌍릉’으로 불린다. 북쪽의 큰 봉분이 왕, 남쪽의 작은 봉분이 왕비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된다. 매끈하게 다듬은 화강암을 사용해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봉분을 조성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일본인 사학자들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으나, 이미 도굴된 상태였고 썩고 남은 목관, 토기, 옥장신구, 치아, 관못 등이 출토되었다. 2017년과 2019년에 다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큰 봉분에서 인골이 발견되었다. 인골의 주인은 7세기 전반에 사망한 50대 이상의 남성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백제의 30대 임금인 무왕(재위 600-641)과 왕비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자료
- 백제왕도 핵심유적 익산지역 발굴조사 마스터플랜 수립 보고서, 문화재청, 2020.12. -> 시기별 조사결과 정리되어 있음.
- 익산 쌍릉(소왕릉)에서 문자없는 묘표석 2개 발견 – 발굴현장 설명회, 문화재청 보도자료, 2019.9.19. https://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701645§ionId=b_sec_1&mn=NS_01_02 -> *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익산시 석왕동의 백제 시대 무덤으로, 대왕릉과 소왕릉이 180m가량 서로 떨어져 있음. 익산 쌍릉은 문헌 기록에 의하면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 능으로 알려져 왔고, 고려 시대에 이미 도굴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들 두 고분은 1917년 일본인 학자(야쓰이 세이이쓰, 谷井濟一)에 의해 발굴된 바 있으나, 정확한 정보를 남기지 않아 2017년 8월부터 고분의 구조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조사가 진행되어 왔다. 소왕릉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9년 4월 고유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봉분과 묘도의 축조과정과 양상을 파악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발굴 흔적과 그 이전 도굴 흔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내 최초로 왕릉급 고분에서 두 종류의 묘표석이 발견된 점이다. / 소왕릉은 선화공주와 관련된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고분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번 발굴에서는 이와 관련된 적극적인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봉토나 석실의 규모와 품격에 있어서 왕릉급 임을 확인했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묘표석은 각각 석실 입구와 봉토 중에 위치하고 문자가 없는 점에서 무덤을 수호하는 진묘(鎭墓)와 관련된 시설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백제 왕실의 장묘제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 신라서 온 선화공주는 익산 쌍릉에 없었다, 한겨레, 2019.9.19.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10100.html -> 주목되는 것은 소왕릉이 지난해 발굴된 대왕릉을 그대로 빼어닮은 왕릉급의 얼개임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소왕릉의 봉분은 지름 12m, 높이 2.7m 정도다. 암갈색 점질토와 적갈색 모래질점토를 번갈아 쌓아올린 판축기법을 썼는데, 대왕릉 판축기법과도 유사하다. 석실은 백제 말기 사비시대 왕릉의 전형적인 얼개인 육각형 단면의 굴식돌방(횡혈식석실)이다. 길이 340㎝, 폭 128㎝, 높이 176㎝로 대왕릉의 석실 규모(길이 400㎝, 폭 175㎝, 높이 225㎝)보다 작으나 측벽 2매, 바닥석 3매, 덮개돌 2매, 후벽 1매, 고임석 1매의 짜임새는 같으며, 석재 가공 또한 대왕릉처럼 정교하다. / 소왕릉은 지난해 발굴한 대왕릉에서 약 180여m 떨어져 있으며, 함께 묶여 쌍릉으로 불리고 있다. 대왕릉과 소왕릉은 향가 <서동요>에 나오는 연애담 설화의 주인공으로 익산에 백제의 왕도를 새롭게 닦으려 했던 무왕과 그의 부인 선화공주가 각각 묻힌 무덤이라고 <고려사> 등에 기록이 전해져 왔다. 실제로 지난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대왕릉 재발굴 당시 나온 인골이 ‘620~659년 숨진 60대 전후 남성’이란 분석결과를 내놓으며 무덤 주인이 무왕임을 사실상 확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