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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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Former Main Building of Iri Agriculture and Forestry High School, Iksan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영문명칭 Former Main Building of Iri Agriculture and Forestry High School, Iksan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고봉로 79 (마동, 전북대학교익산캠퍼스)
국가유산 종목 국가등록문화재 제758호
지정(등록)일 2019년 7월 8일
분류 등록문화재
수량/면적 1동(배면 증축부 제외), 1,002㎡
웹사이트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1963년 11월에 완공된 이리농림고등학교의 본관 건물이다. 이리농림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조선총독부가 농업육성을 목적으로 세운 5년제 관립 이리농림학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리농림학교는 전국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들었으며 한국인과 일본인이 절반씩 구성되어 있었다. 광복 후 이리농림중학교(6년제)로 개편되었고 1951년 이리농림고등학교(3년제)로 다시 개편되었다.

이 건물은 서양식 벽돌조 교사로서 좌우대칭의 균형 잡힌 외관을 지니고 있다. 벽체는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정면 중앙부와 벽체 하부, 창호 주변 등은 화강석을 사용하여 재료의 대비효과를 보여준다. 건립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1960년대 학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가치가 있다.

영문

Former Main Building of Iri Agriculture and Forestry High School, Iksan

This building was built in 1963 as the main building of Iri Agriculture and Forestry High School. The name Iri is the old name of the Iksan area.

The former Iri Agriculture and Forestry High School was a government school constructed in 1922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to promote agriculture. It gathered talented students from all over the country and was composed half of Koreans and half of Japanese. After Korea regained independence in 1945, it was reorganized into a six-year secondary school, and in 1951, it was reorganized again into the three-year Iri Agriculture and Forestry High School. At that time, this school was the most distinguished agricultural education institution in the area.

This building is a Western-style brick building. It has a symmetrical design with the entrance in the center. Granite was used for the foundation and central part of the building, including the entrance’s porch. Overall, the building’s original appearance has been maintained.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1963년 이리농림고등학교의 본관으로 건립되었다. 이리는 익산 지역의 옛 이름이다.

이리농림고등학교의 전신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조선총독부가 농업육성을 목적으로 세운 관립 학교이다. 전국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들었으며, 한국인과 일본인이 절반씩 구성되어 있었다. 광복 후에는 6년제 중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51년 3년제 이리농림고등학교로 다시 개편되었다. 이 학교는 당시 이 지역을 대표하는 농업 전문 교육기관이었다.

이 건물은 서양식 벽돌건물로, 가운데 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된 형태이다. 건물 전체의 하단부, 정면 중앙부, 정면 출입구의 포치에는 화강석을 사용했다. 전체적으로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