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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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전적지
Battlefield of Ichi
이치전적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이치전적지
영문명칭 Battlefield of Ichi
한자 梨峙戰蹟地
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12-15
지정(등록) 종목 시도기념물 제26호
지정(등록)일 1976년 4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전적지/임란전적지
수량/면적 3,318,357.83㎡
웹사이트 이치전적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치*전적지는 선조25년(1592) 전라도를 침략한 왜군과 조선군이 맞서 싸운 곳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일 때 왜군이 이곳을 넘어 전주성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이치에는 동복 현감 황진(黃進), 광주 목사 권율(權慄), 의병장 황박(黃璞) 등의 지휘 아래 전라도 관군 1,500명과 의병이 지키고 있었다. 조선군은 이치의 험난한 지형을 이용하여 장수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가 이끄는 왜군과 싸워 승리하였다.

이치전투는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군의 기세를 꺾고, 전라도를 지킨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정유재란(1597년)까지 조선의 군량보급과 병력보충 등에 크게 기여하여 조선군의 사기를 높이고, 반격할 수 있는 역할을 하였다.

이 곳에는 이치전투를 기리기 위해 ‘이치전적비’ 등 여러 기념물들이 서있어 그 날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 이치 : 대둔산 기슭인 운주와 진산 사이의 고개

영문

Battlefield of Ichi

This is where a massive battle between the armies of Joseon and Japan took plac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t the time, anticipating that the war could linger on, the Japanese decided to move their forces towards Jeolla-do Province, which was the most fertile region of Joseon. Ichi is the name of the hill on the border of Chungcheong-do and Jeolla-do, and thus served as a gateway to Jeolla-do. At this hill, a Joseon army of over 1,500 soldiers fought and defeated the Japanese army. They were led by Hwang Jin (1550-1593), the local magistrate, Gwon Yul (1537-1599), the army commander of Jeolla-do, and Hwang Bak, the commander of the civilian army.

The Battle of Ichi was the first victory on land for Jose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which helped to break the morale of the Japanese troops and to prevent them from collecting provisions and gaining reinforcement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조선군 사이의 격전이 있던 곳이다.

당시 일본군은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곡창지대인 전라도 지역으로 진출하고자 하였다. 이치는 오늘날의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전라도로 들어가는 관문과 같은 곳이었다. 당시 현감인 황진(1550-1593), 전라도 절제사 권율(1537-1599), 의병장 황박 등의 지휘 아래 1,500여 명의 군사들이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며,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하였다.

이치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육지전에서의 최초의 승리였으며, 이를 통해 왜군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곡창지대인 전라도 지역을 지켜냄으로써, 조선의 군량보급과 병력보충 등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