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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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Commemorative Plaque of Yi Sim-won for His Loyalty
"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영문명칭 Commemorative Plaque of Yi Sim-won for His Loyalty
한자 李深源 忠臣 旌閭 懸板
주소 충청남도 계룡시 금암1길 7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338호
지정일 1995년 3월 6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판목류
수량/면적 2개
웹사이트 "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초기의 충신인 이심원(李深源, 1454-1504)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문에 내린 현판이다. 이심원은 효령대군의 증손이자 김종직의 문인으로, 학문과 의술에 뛰어났다. 성종 때 고모부인 임사홍(任士洪)이 국권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보고 성종에게 아뢰어 멀리 유배를 보냈으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재집권한 임사홍의 모함에 연루되어 두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1514년(중종 14)에 조광조(趙光祖)와 정광필(鄭光弼) 등의 상소로 죄를 면하고 주계군으로 증직되었다. 이후 홍록대부로 추증이 되어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이 세워졌다.

정려문은 정면 2칸‧측면 1칸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명정 현판 이외에도 중수기와 정려기 등 4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명정 현판에는 ‘충신주계군심원지려(忠臣朱溪君深源之閭)라고 적혀 있으며, 원래는 엄사리에 있었으나 1980년대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영문

This commemorative plaque is for the loyalty of Yi Sim-won (1454-1504),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early Joseon period.

Yi Sim-won was the fourth-generation descendant of King Taejong (r. 1400-1418).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r. 1469-1494), he submitted petitions several times to criticize his uncle, Im Sa-hong, for abusing political power and for his shallow personality, and finally sent Im to exile. However, upon King Yeonsangun’s (1494-1506) ascent to the throne, Im reclaimed power in the royal court, and Yi Sim-won and his two sons were killed in 1504. He was posthumously reinstated in 1519, and a commemoration was bestowed to him in recognition of his loyalty.

A pavilion was built to house the commemorative plaque and other plaques recording the history of the commemoration and pavilion construction. This pavilion was originally built in Eomsa-ri, bu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due to urban development in the 1980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심원(1454-1504)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 현판이다.

이심원은 태종(1400-1418)의 4대손이다. 이심원은 성종대에 고모부인 임사홍을 비판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고, 결국 임사홍은 유배되었다. 그러나 연산군 즉위 후 임사홍이 권력을 다시 잡았고, 이심원은 1504년에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1519년에 복권되었고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가 내려졌다.

보호각을 세워 정려 현판을 보관하고 있으며, 보호각 내부에는 보호각 중수기와 정려기 등 4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보호각은 원래 엄사리에 있었으나, 1980년대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