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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봉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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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봉 묘역
Cemetery of Yi Seon-bong’s Family
이선봉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이선봉 묘역
영문명칭 Cemetery of Yi Seon-bong’s Family
한자 李善鳳 墓域
주소 인천광역시 계양구 동양동 152-43
지정번호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3호
지정일 2004년 4월 6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896㎡
웹사이트 이선봉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성종의 12남 무산군의 증손자 순평군 이선봉(1578-1660)이 이곳(동양동)에 정착하였는데 병자호란시 아내 현부인 영월 엄씨는 며느리 숙인 능성구씨와 강화도로 피난을 갔으나, 청나라 군사가 상륙하자 스스로 죽겠다고 자결하였다. 그러자 며느리도 목숨을 끊어 훗날 인조 16년에 각각의 열녀, 정려가 내려졌다.

3기의 묘 중 첫 번째는 이선봉과 현부인의 합장, 두 번째는 아들 한성판관 이필혐과 숙인 연안이씨의 합장, 세 번째는 숙인 능성구씨의 묘로 시체를 찾지 못해 유서를 써 놓은 치마폭과 신을 매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정 국문

조선시대의 왕족인 순평군 이선봉(順平君 李善鳳, 1578~1660) 부부와 이선봉의 아들 이필혐(李必馦) 부부의 무덤이다. 이선봉은 성종(1469~1494 재위)의 12번째 아들 무산군 이종(茂山君 李悰, 1490~1525)의 증손자이고, 아들 이필혐은 한성부 판관을 역임하였다.

1637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선봉의 부인 영월엄씨는 며느리 능성구씨와 함께 강화도로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강화도에 상륙한 청나라 군사가 닥치는 대로 양민을 학살하자, 엄씨는 적군에 잡혀 욕을 보이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구씨도 시어머니의 뒤를 따라 자결하고 말았다. 훗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부에게는 1638년 열녀 정려가 내려졌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이 이선봉과 부인 엄씨의 합장묘이고, 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들 이필혐과 부인 연안이씨의 합장묘이며, 맨 오른쪽은 이필혐의 부인 능성구씨의 가묘(假墓)이다. 구씨의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자결하면서 남긴 신발과 유서를 쓴 치마폭을 대신 묻어 묘를 조성했다고 한다. 이선봉 부부의 묘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문인석 1쌍이 갖추어져 있고, 이필혐 부부의 묘와 능성구씨의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문인석 1쌍이 있다. 또 묘역의 양 끝에는 망주석 1쌍이 있다.

영문

Tombs of Yi Seon-bong and His Family

This is the tomb of Prince Yeongsingun (1454-1526), also known by his birth name Yi I, and his wife Lady Bak. Yi I was the great-grandson of King Taejong (r. 1400-1418)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His grandfather was Prince Hyoryeong, King Taejo’s second son, and his father was Prince Uiseonggun (1396-1486), the eldest son of Prince Hyoryeong.

The tomb has two earthen mounds. The one to the left belongs to Yi I, and the one to the right belongs to Lady Bak. In front of the mounds is a tombstone with a capstone, a stone table, a stone incense table, and statues of two civil officials.

Nearby, there are ten tombs belonging to Yi I’s descendants. Each tomb features a tombstone and various stone figures providing valuable information about how royal tombs were arranged in the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왕족인 이선봉(1578~1660) 부부와 그의 아들 이필혐 부부의 무덤이다. 이선봉은 성종(재위 1469~1494)의 고손자이고, 아들 이필혐은 한성부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637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자와 종친들은 강화도로 피난하였고, 이때 이선봉의 부인 영월엄씨와 며느리 능성구씨도 강화도로 떠났다. 그러나 강화도에 상륙한 청나라 군사가 닥치는 대로 양민을 학살하자, 엄씨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구씨도 시어머니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훗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열녀에게는 1638년 정려가 내려졌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이 이선봉과 부인 엄씨의 합장묘이고, 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들 이필혐과 부인 연안이씨의 합장묘이며, 맨 오른쪽은 이필혐의 부인 능성구씨의 가묘(honorary tomb)이다. 구씨의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자결하면서 남긴 신발과 유서를 쓴 치마폭을 대신 묻었다고 한다. 이선봉 부부의 묘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문인석 1쌍이 갖추어져 있고, 이필혐 부부의 묘와 능성구씨의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문인석 1쌍이 있다. 또 묘역의 양 끝에는 망주석 1쌍이 있다.

참고자료

  • 순평군(順平君)이선봉(李善鳳)(1578-1660), 積善之家 必有餘慶 不積善之家 必有餘殃,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yugy1000&logNo=60203443009&categoryNo=177&proxyReferer=&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석물 상세사진, 이선봉 가계 설명 (부친은 완성군 이수영, 조부는 부안군 이석수, 증조부는 성종의 12번째 왕자인 효정공 무산군 이종이다.) / 종친부 소속으로 정2품까지 올라 순평군에 봉해졌다는 설명.
  • 이선봉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2300530000&pageNo=1_1_1_1 → 이선봉(1578~1660)은 조선조 성종의 12남인 무산군의 손자이다. 나라에 공이 있어 순평군(順平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부인은 현부인에 올랐다. 부평 동면(현 동양동)에 낙향하여 정착하였는데, 그의 아들 이필혐은 동양동에서 출생하여 벼슬길에 올라 한성판관을 지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이 강화도로 피난을 갔을 때, 청나라 군사가 강화도에 상륙하여 닥치는 대로 양민을 학살하자 현부인 엄 씨는 적군에 잡혀 욕을 보이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러자 그의 자부인 이필혐의 처 구 씨도 어린 여자종의 치마폭에 유서를 써넣고 시어머니의 뒤를 따라 자결하고 말았다. 훗날 이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인조 16년(1638)에 이들 고부에게 열녀정려가 내려졌는데, 약 40여 년 전까지 열녀문이 보존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당산에 위치하고 있는 묘역에는 승헌대부 순평군지묘, 현부인 영월 엄 씨, 능선 구 씨의 묘가 있으며, 당시에 세운 묘비와 문인석, 망주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갈색 대석에 갈색비로, 높이는 1m 23cm이고, 폭이 49cm이다. 능선 구 씨의 묘는 시체를 찾지 못하여 자결시 남은 신발과 유서를 쓴 치마폭을 묻은 것으로 전해진다.
  • 이필혐 처 능성구씨, 디지털부천문화대전 http://bucheo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cheon&dataType=01&contents_id=GC01601512 -> 능성구씨는 시어머니 엄씨가 목을 찔러 자결하자 뒤이어 치마폭에 유서를 남겨 어린 여종에게 주고, 그대로 물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