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선생 묘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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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선생 묘 일원
Tomb of Yi Saek
이색 선생 묘 일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이색 선생 묘 일원
영문명칭 Tomb of Yi Saek
한자 李穡 先生 墓 一圓
주소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35 (영모리)
지정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제89호
지정일 1993년 11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150㎡(1필)
웹사이트 이색 선생 묘 일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의 묘역이다.

이색은 경상북도 영해군(현 영덕군) 영해읍 괴시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2세 때 아버지 이곡(李穀)의 고향인 서천군 한산면 고촌리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고향의 숭정사(崇井寺), 일광사(日光寺)에서 공부하였고, 18세 때는 천방산 대둔사(大屯寺)에서 공부하였다. 1353년(공민왕 2)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올라 고려 공민왕의 개혁부터 조선의 건국까지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끝까지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쳐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학자로도 이름을 떨쳤다. 또한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권근(權近), 길재(吉再) 등 뛰어난 제자를 길러냈다. 조선 건국 후에는 조정에 머물라는 이성계의 권유를 끝내 거절하고 낙향하여 전국을 유람하던 중에 여주 신륵사에 머물다 생을 마쳤다. 이색의 셋째 아들인 이종선(李種善)이 한산 이씨 문중 묘역이 있는 이곳으로 모셔와 장사를 지냈다.

이색의 묏자리는 기린이 내려와 풀을 뜯어 먹는 기린하전(麒麟下田)의 명당으로 전해지며. 조선 시대의 승려이자 풍수의 대가였던 무학대사가 골라준 자리라고 한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고, 망주석, 문인상, 석마가 각각 2기씩 있다. 상석 오른쪽에는 ‘목은선생 이색지묘(牧隱先生 李穡之墓)’라고 쓴 묘비가 세워져 있다. 묘역의 남동쪽에는 이색을 기리기 위해 1666년(현종 7)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이색을 비롯한 한산 이씨의 선현을 모신 효정사가 문헌서원 안에 있다.

영문

Tomb of Yi Saek

This is the tomb of Yi Saek (1328-1396, pen name: Mogeun),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who lived at the tur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Yi Saek was born at his maternal grandparents’ house in Yeonghae (today’s Yeongdeok, Gyeongsangbuk-do Province), but moved shortly thereafter to Seocheon, which was his father’s hometown. In 1353, he placed first in the state examination and was given an official post. He was renowned for his steadfast loyalty to the Goryeo dynasty during the turbulent period between the reform of King Gongmin (r. 1351-1374)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dynasty. He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served as prime minister, became an esteemed eminent scholar, and raised excellent students such as Jeong Mong-ju (1337-1392), Jeong Do-jeon (1342-1398), and Gwon Geun (1352-1409).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dynasty, he refused the requests of King Taejo (r. 1392-1398) that he serve in the central government and traveled around the country until his death at Silleuksa Temple in Yeoju. He was buried here at the family cemetery of the Hansan Yi Clan by his third son, Yi Jong-seon (1368-1438).

According to Korean feng shui principles, the site of Yi Saek’s tomb is considered to have auspicious topography that resembles the mythical creature girin feeding on grass. The location is said to have been picked by the Buddhist monk Muhak (1327-1405) who was known for his skill in feng shui.

In front of the earthen burial mound, there are various stone structures, including a tombstone, a spirit seat, a table, an incense table, a pair of pillars, a pair of civil officials, and a pair of horses. To the southeast of the tomb is a stele erected in 1666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Yi Saek, as well as Munheonseowon Confucian Academy, which commemorates eight Confucian scholars of the Hansan Yi Clan, including Yi Saek.

영문 해설 내용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색(1328-1396, 호: 목은)의 묘이다.

이색은 외가인 영해군(지금의 경상북도 영덕) 출신으로, 2세 때 아버지의 고향인 서천으로 이주하였다. 1353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의 개혁부터 조선의 건국까지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끝까지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쳐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대학자로도 이름을 떨쳐 정몽주(1337-1392), 정도전(1342-1398), 권근(1352-1409) 등 뛰어난 제자를 길러냈다. 조선 건국 후에는 조정에 머물라는 태조(재위 1392-1398)의 권유를 끝내 거절하고 전국을 유람하던 중 여주 신륵사에 머물다 생을 마쳤다. 이색의 셋째 아들인 이종선(1368-1438)이 한산이씨 문중 묘역이 있는 이곳으로 모셔와 장사 지냈다.

이색의 묘가 자리한 곳은 풍수지리상 기린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형국의 명당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의 승려이자 풍수의 대가였던 무학대사(1327-1405)가 골라준 자리라고 한다.

봉분 앞에는 묘표, 상석, 향로석이 있고, 망주석, 문인상, 석마가 각각 2기씩 있다. 묘역 남동쪽에는 이색을 기리기 위해 1666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이색을 비롯한 한산이씨 선현 8인을 기리는 문헌서원이 있다.

문맥요소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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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선생_묘_일원 Object 이색 선생 묘 일원
J34-0089-0000 Heritage (충청남도_기념물_제89호)_이색 선생 묘 일원
이색 Actor 이색 1328~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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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