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대곡사 삼화상과 조사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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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대곡사 삼화상·조사 진영
Portraits of Three Buddhist Monks and Three Patriarchs in Daegoksa Temple, Uiseong
의성 대곡사 삼화상과 조사 진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의성 대곡사 삼화상·조사 진영
영문명칭 Portraits of Three Buddhist Monks and Three Patriarchs in Daegoksa Temple, Uiseong
한자 義城 大谷寺 三和尙·祖師 眞影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894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27호
지정(등록)일 2010년 11월 11일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나한조사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4폭
웹사이트 의성 대곡사 삼화상과 조사 진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화상은 수행을 많이 한 승려를, 조사는 후세 사람의 존경을 받을 만한 승려이거나 1종 1파를 세운 승려에게 붙여지는 칭호이다. 진영은 조사나 고승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삼화상은 지공, 나옹, 무학을 가리키며 이들은 고려 말에 활약했던 선종(禪宗)*의 승려로 지공은 나옹의 스승이며, 나옹은 무학의 스승이다. 또한 모셔진 조사의 진영은 청허당 휴정(淸虛堂 休靜), 사명당 유정(泗溟堂 惟政), 포허당 담수(抱虛堂 曇秀)의 모습을 각각 그린 것이다.

고려 말기의 개혁파로 알려진 지공, 나옹, 무학은 조선 시대 신앙의 대상이 되어 전국 사찰에 진영이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대곡사 창건 전후 사적기」에 따르면 지공과 나옹이 대곡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로 삼화상 진영을 대곡사에 모신 것으로 보인다.

삼화상 진영은 가로가 긴 화면에 지공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나옹과 무학을 1폭에 나눠 나란히 그렸다.

삼화상 진영과 청허당 휴정, 사명당 유정의 진영은 정조 5년(1782)에 같은 화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림의 표현 기법이 비슷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삼화상 진영은 1폭으로 된 것들 중에서는 만든 시기가 가장 앞섰다. 포허당 담수 진영은 정조 16년(1793) 당시 유명한 화가였던 신겸이 그린 것으로, 사실적인 얼굴 묘사 등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 선종: 불경에 기대지 않고 참선으로서 자기를 구명하며 이심전심으로 석존의 깨달음을 중생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종지로 하는 종파.

영문

Portraits of Three Buddhist Monks and Three Patriarchs in Daegoksa Temple, Uiseong

These four paintings, dating to the late 18th century, depict eminent Buddhist monks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One of the paintings portrays three Buddhist monks of the late Goryeo period, namely Jigong (?-1363), Naong (1320-1376), and Muhak (1327-1405). Jigong is depicted in the center with Naong on the right and Muhak on the left.

Jigong was a monk from India who came to Korea in the 14th century and greatly contributed to the spreading of Meditative Buddhism. He taught monk Naong and many other monks who became the leading figures in the Buddhist circles of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s. He is said to have founded Daegoksa Temple together with Naong. Naong was the royal preceptor of King Gongmin (r. 1351-1374), worked to revive the declining popularity of Meditative Buddhism, and laid the foundation for the Buddhism of the Joseon period. Muhak was a student of Jigong and Naong and, in 1392, became the royal preceptor of King Taejo,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He was also very knowledgeable in feng shui and participated in process of establishing the location for the new capital, Hanyang (in today’s Seoul).

The three other paintings are the portraits of Buddhist patriarchs Hyujeong (1520-1604), Yujeong (1544-1610), and Damsu. Hyujeong and Yujeong both led monk soldiers to fight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Yujeong on several occasions participated in peace negotiations from 1594 to 1597.

The portrait of the three monks and the portraits of Hyujeong and Yujeong were all painted in 1782 by the same group of monk painters. The former one is the earliest extant portrait of three monks painted together.

The portrait of Monk Damsu was painted in 1793 by Singyeom, the most skillful monk painter of the time.

  • He died in 1363 but founded the temple in 1368?

영문 해설 내용

18세기에 그려진 이 4점의 그림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고승을 그린 것이다.

한 그림에 함께 그려진 세 승려는 고려 말에 활약했던 지공(?-1363), 나옹(1320-1376), 무학(1327-1405)이다. 지공을 중심으로, 무학과 나옹을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그렸다.

지공은 인도 승려로, 14세기에 고려에 들어와 선(禪) 사상을 널리 알렸다. 나옹을 비롯한 많은 고려 승려들을 지도하였고, 이후 그 제자들이 고려 말 조선 초의 불교계를 이끌었다. 제자인 나옹과 함께 대곡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나옹은 공민왕(재위 1351-1374)의 왕사였으며, 쇠락해가는 선종을 진작시키며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웠다. 무학은 지공과 나옹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392년 조선 태조의 왕사로 책봉되었다. 풍수지리에도 능했으며, 태조가 한양을 새 왕도로 정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다른 세 그림은 각각 휴정(1520-1604), 유정(1544-1610), 담수의 진영이다. 휴정과 유정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유정은 1594년부터 1597년까지 일본과의 강화 회담에 네 차례 참여하기도 했다.

삼화상 진영과 휴정, 유정의 진영은 1782년에 같은 화승들에 의해 그려졌다. 특히 한 폭으로 된 삼화상 진영 중에서 제작시기가 가장 이르다.

담수 진영은 1793년 당대 최고의 화승 중 한 명인 신겸이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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