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금성산 고분군
의성 금성산 고분군 Ancient Tombs in Geumseongsan Mountain, Uis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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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의성 금성산 고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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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ncient Tombs in Geumseongsan Mountain, Uiseong |
한자 | 義城 金城山 古墳群 |
주소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탑리리일대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28호 |
지정(등록)일 | 1998년 4월 13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
수량/면적 | 296,825㎡ |
웹사이트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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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18
의성은 지리적으로 경주에서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중요 교통로에 위치하여, 당시 신라에서는 이곳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의성에 현존하는 대규모의 고분에서도 확인된다.
금성산 고분군은 현재 행정 구역상 대리리(大里里), 탑리리(塔里里), 학미리(鶴尾里)로 구분되지만, 하나의 능선에 지속적으로 조성된 대규모의 고분군이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이곳이 속한 조문국(召文國)은 신라 벌휴 이사금(伐休尼師今) 2년(185)에 신라의 영향력 아래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대개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60년 국립중앙박물관의 탑리리 고분군부터 2015년 성림문화재연구원의 대리리 고분군까지, 금성산 고분군에서는 총 7회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지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조문국 경덕왕릉(景德王陵)이라 전해지는 고분을 포함해 약 374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발굴 조사 결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유사돌무지덧널무덤(變形積石木槨墳),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등 의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묘의 형태가 거의 모두 발견되었다. 타 지역에서는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 단발적으로 형성된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대규모의 고분이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는 점과, 유사돌무지덧널무덤(變形積石木槨墳)이 금성산 고분군의 주요한 묘 형태라는 점은 당시 의성의 세력이 매우 강력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다.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유물의 다수는 ‘의성양식토기’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관한 탑리 1호분 내부의 발굴 조사에서는 금동관, 금동장식, 은제과대, 금동식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발굴 조사(대리리 46호, 47호, 48호, 49호)에서는 금동관모, 팔뚝가리개, 금동과대, 삼엽환두대도, 은제관식, 의성양식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오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였다. 대규모 고분의 축조, 수준 높은 위세품(威勢品)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금성산 고분군에 묻힌 ‘소문의 지배자’들은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강력한 독자적 세력을 구축해서 경북 북부 지역의 최대 세력으로 군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9
고분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을 말한다. 금성산 일대에 200여 기에 이르는 고분이 분포하는데, 발견된 유물은 5~6세기 것으로 추정한다. 지름 15~19m, 높이 3~4m의 대형 고분, 지름 10~15m, 높이 2~4m의 중형 고분, 지름 10m 미만의 소형 고분이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원형으로 쌓아 올린 고분이 대부분이다.
흙을 쌓은 방식은 시신을 놓은 자리를 중심으로 여러 번에 걸쳐 흙을 수평으로 다져서 쌓아 올린 것이다. 고분을 만드는 데 사용된 흙은 순수한 점토로 그 양은 매우 많았으며, 사용된 흙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는 흙과 색깔이 달라서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을 만들기 위해서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되었을 것이므로, 이는 영향력이 큰 사람에 의해 조성된 것임을 알려준다.
금성산 고분군을 삼한(三韓)* 시대에 부족 국가인 조문국(召文國)의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 조문국은 지금의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수도로 하던 국가로, 신라 9대 왕이었던 벌휴왕 2년(185)에 신라에 합병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조문국에 관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짧게 나와 있을 뿐 다른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금성산 고분군은 의성의 지방 세력과 신라와의 관계, 사회구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삼한: 삼국 시대 이전에, 우리나라 중남부에 있었던 세 나라. 마한, 진한, 변한을 이른다.
영문
- Ancient Tombs in Geumseongsan Mountain, Uiseong
2018
The ancient tombs in Geumseongsan Mountain were constructed for the leaders of Jomun, an ancient state which occupied the present-day Uiseong area in the early Three Kingdoms period. These tombs are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etween the late 4th century and mid-6th century.
The Geumseong-myeon area of Uiseong-gun was the capital of Jomun for a long time. According to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sagi), the kingdom of Silla conquered Jomun in 185. However, the size of these tombs and the excellent style of the artifacts found here suggest that the leaders of Jomun maintained their strong influence over the northern Gyeongsangbuk-do area, while developing close relations with Silla.
The ancient tombs in Geumseongsan Mountain have been excavated seven times between 1960 and 2015. Excavation surveys revealed that there are 374 tombs in this tomb complex, including a royal tomb presumably occupied by King Gyeongdeok of Jomun. The surveys also found that most tombs in this complex were constructed of a wooden chamber covered with a stone mound. The long-term use of this early tomb style attests to the continued regional power and influence of the Jomun leaders.
Most of the artifacts excavated from these tombs are Uiseong-style pottery. However, in Tomb No. 1 in Tamni-ri and Tombs No. 46, 47, 48, and 49 in Daeri-ri, other artifacts were discovered including gilt-bronze crowns, gilt-bronze accessories, gilt-bronze shoes, gilt-bronze caps, gilt-bronze belts, silver belts, silver diadem ornaments, arm guards, and swords with ring pommel.
2019
There are a total of over 200 tombs scattered across the Geumseongsan Mountain area. The tombs are presumed to date to the 5th-6th centuries.
Most of the tombs have rounded mounds which were built by tamping several layers of dirt above the buried body. A significant amount of the dirt used in the tomb mounds differs in color from the local soil, which suggests that it was brought from another area. The construction of these tombs at the time would have required an enormous number of workers, indicating that the tombs likely belong to the members of the ruling class of this area.
Some historians believe that these tombs were built by the Jomun chiefdom, which occupied the Uiseong area until 185 when it fell to the Silla kingdom.
The tombs in the area can be classified into large tombs measuring 15-19 m in diameter and 3-4 m in height, medium-sized tombs measuring 10-15 m in diameter and 2-4 m in height, and small tombs measuring less than 10 m in diameter.
영문 해설 내용
2018
금성산 고분군은 삼국시대 초기 의성 지역의 소국이었던 조문국(召文國)의 지배자들이 묻힌 대규모의 고분군으로, 대개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오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조문국은 신라 벌휴 이사금 2년(185)에 신라의 영향력 아래로 편입되었으나, 대규모 고분의 축조, 수준 높은 위세품(威勢品)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금성산 고분군에 묻힌 ‘소문의 지배자’들은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강력한 독자적 세력을 구축해서 경북 북부 지역의 최대 세력으로 군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부터 2015년까지 금성산 고분군에서는 총 7회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지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조문국 경덕왕릉(景德王陵)이라 전해지는 고분을 포함해 약 374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유물의 다수는 ‘의성양식토기’이지만, 금동관, 금동장식, 은제과대, 금동식리, 금동관모, 팔뚝가리개, 금동과대, 삼엽환두대도, 은제관식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2019
금성산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200여 기의 고분은 5-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원형의 봉토분으로, 시신을 놓은 자리 위에 흙을 수평으로 다져서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만들었다. 무덤을 만드는 데 사용된 흙의 양이 매우 많았으며, 이 지역에서 나는 흙과 색깔이 다른 것으로 보아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되었을 것이므로, 무덤의 주인공은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세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 의성 지역의 소국이었던 조문국의 고분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 조문국은 185년에 신라에 합병되었다.
지름 15~19m, 높이 3~4m의 대형 고분, 지름 10~15m, 높이 2~4m의 중형 고분, 지름 10m 미만의 소형 고분 등으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