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안호상 고택
의령 안호상 고택 An Ho-sang’s House, Uir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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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의령 안호상 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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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n Ho-sang’s House, Uiryeong |
한자 | 宜寧 安浩相 古宅 |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입산로2길 13-6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439호 |
지정(등록)일 | 2008년 2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의령 안호상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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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의령 안호상 고택은 1911년 건립된 주택으로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6·25전쟁 때 사랑채와 대문채가 화재로 사라졌고 현재는 안채만 원래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지금 있는 아래채와 협문은 화재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안채는 앞면 5칸, 옆면 1.5칸 규모로,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왼쪽에서부터 방, 큰 마루, 방, 부엌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으며, 각 방마다 좁은 마루를 두었다. 왼쪽의 좁은 마루는 난간을 두른 누마루*로 그 아래 함실아궁이**가 있다.
안호상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말을 지키기는 모임인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문교부장관을 지냈다.
- 누마루: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 함실아궁이: 부뚜막이 없이 불길이 바로 방을 데울 수 있도록 한 아궁이
영문
An Ho-sang’s House, Uiryeong
This is the house of An Ho-sang (1902-1999), the first Minister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when the use of the Korean language was discouraged, he worked as a member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to research and promote the language and its alphabet. He was also a leader of a religion called Daejonggyo which worships Dangun, the legendary founder of the first Korean kingdom.
Originally, the house consisted of a women’s quarters, men’s quarters, and gate quarters. However, the men’s quarters and gate quarters were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nd only the women’s quarters remains today. The front gate and the storehouse on the right were built sometime after the war.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의 집이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말과 한글 사용에 대한 탄압이 있을 당시 조선어학회의 일원으로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보급하였다. 그는 또한 한국 최초 국가의 시조인 단군을 신앙하는 대종교의 지도자이다.
원래 이 집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사랑채와 대문채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안채만 남아 있다. 협문과 아래채는 전쟁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