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쌍절각
의령 쌍절각 Ssangjeolgak Commemorative Pavilion, Uiryeong |
|
대표명칭 | 의령 쌍절각 |
---|---|
영문명칭 | Ssangjeolgak Commemorative Pavilion, Uiryeong |
한자 | 宜寧 雙節閣 |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기강로 383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56호 |
지정(등록)일 | 2019년 5월 1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민간신앙/기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의령 쌍절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의령 쌍절각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손인갑과 그의 아들 손약해 두 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이다.
손인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장이 되어 성주, 무계, 현풍, 초계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고, 이를 인정받아 동래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을 얼마 앞두고 초계 마진전투에서 왜군을 쫓다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손약해는 남은 병사들을 모아 전쟁터로 뛰어 들었으나 힘을 다하여 목숨을 잃었다.
쌍절각은 조선 광해군 1년(1609)에 손인갑의 후손들이 살던 봉수면 신현리에 지었으나, 1943년 5월 임진왜란 당시 싸움터였던 이곳으로 옮겨왔다. 자연석의 주초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와가이다.
- 정려각(旌閭閣):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 훌륭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
영문
Ssangjeolgak Commemorative Pavilion, Uiryeong
This pavilion enshrines commemorative plaques bestowed to Son In-gap (1544-1592), a leader of a civili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his son Son Yak-hae (1565-1592) for their patriotic loyalty.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 pavilions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Upon the outbreak of the invasions, Son In-gap gathered civilian troops in Hapcheon and won several battles. He was promoted to magistrate of Dongnae for these contributions, but shortly before his appointment, he was killed while fending off Japanese invaders in Chogye (in today’s Hapcheon). Upon hearing that his father had died in battle, Son Yak-hae gathered the remaining soldiers and ran to the battle, where he was also killed.
This pavilion was first built in 1609 in Sinhyeon-ri, Bongsu-myeon where the descendants of Son In-gap lived. In 1943,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which is the site of the battl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영문 해설 내용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손인갑(1544-1592)과 그의 아들 손약해(1565-1592)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정려를 모신 보호각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웠다.
손인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래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을 얼마 앞두고 초계(지금의 합천 지역)에서 왜군을 쫓다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들은 손약해는 남은 병사들을 모아 전쟁터로 뛰어들었고 역시 전사하였다.
쌍절각은 1609년 손인갑의 후손들이 살던 봉수면 신현리에 세워졌으나, 1943년 임진왜란 당시 싸움터였던 이곳으로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