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가막산 봉수대
의령 가막산 봉수대 Gamaksan Beacon Station, Uir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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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의령 가막산 봉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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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amaksan Beacon Station, Uiryeong |
한자 | 宜寧 可莫山 烽燧臺 |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백곡리 산94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제228호 |
지정(등록)일 | 2000년 8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통통신/통신/봉수 |
수량/면적 | 673㎡ |
웹사이트 | 의령 가막산 봉수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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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의령 가막산 봉수대*는 가막산 서쪽 꼭대기에 위치고 있다. 창원 진동면의 가을포 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은 동남쪽의 함안 파산 봉수대로부터 신호를 받아 서북쪽의 미타산 봉수대에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는 최근까지 높이 30cm정도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둥글게 쌓은 흔적이 3~4단 정도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하나 지금은 개인묘지 등이 들어서면서 파괴되고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봉수대 주변으로 일부 돌을 쌓아 만든 단이 남아 있으며 기와, 자기 조각 등이 발견된다.
그리고 봉수대에서 약 6m 정도 떨어진 곳에 당시 봉수꾼들이 생활하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농작물을 심었던 밭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봉수대(烽燧臺):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올려 외적의 침입이 나 난리가 일어났음을 중앙에 전달하던 통신수단
영문
Gamaksan Beacon Station, Uiryeong
Beacons were a type of a smoke-and-fire-signal communication system to warn of military events such as enemy invasions. The beacons, which are located atop mountains for visibility, had five furnaces which were lit in a particular pattern to indicate the severity of the situation.
In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information was relayed to the central government through a network of beacon stations across the nation. The beacon tower network was comprised of five main lines and other local auxiliary lines. This system was operational until 1894 when the modern communication system was introduced.
This station belonged to an auxiliary line and received a signal from Pasan Beacon Station in Haman to the southeast and sent it northwest to Mitasan Beacon Station.
It is said that there were once remains of a round structure made up of 3-4 stacked layers of around 30 cm-tall unhewn rocks. However, these remains disappeared when private tombs were built at the site. Roof tile shards and porcelain fragments were found on the premises. In the vicinity are the remains of a building and a garden site, which were presumably used by the troops on duty at the station.
영문 해설 내용
봉수는 횃불과 연기로 적의 침입과 같은 군사정보를 알리던 통신 수단이다. 신호가 잘 보이도록 산봉우리에 설치했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다섯 개의 연조에 불을 피워서 상황을 알리는 신호를 전달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봉수망을 통해 중앙으로 정보가 전달되었다. 다섯 개의 직봉을 중심으로, 직봉 사이에는 간봉을 두기도 했다. 이러한 제도는 1894년 근대통신수단이 도입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가막산봉수대는 간봉에 속하는 것으로, 동남쪽의 함안 파산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서북쪽의 미타산봉수대로 전달하였다.
봉수대에는 높이 30cm 정도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둥글게 쌓은 흔적이 3-4단 정도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개인 묘지 등이 들어서면서 파괴되고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주변에서 기와나 자기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봉수대 인근에서는 당시 봉수꾼들이 생활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농작물을 심었던 밭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