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황선생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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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황선생고택
Head House of the Yun Hwang’s Family
윤황선생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윤황선생고택
영문명칭 Head House of the Yun Hwang’s Family
한자 尹煌先生古宅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52번지
지정번호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8호
지정일 1985년 12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4동
웹사이트 윤황선생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윤황(1571-1639)선생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팔송(八松), 시호는 문정공(文正公)이다. 윤증(尹拯)의 조부이며, 성혼(成渾)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선조 30년(1597) 알성문과을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대사간 등을 역임하였으며, 병자호란 때는 척화를 주장하였다. 사후인 숙종 36년(1710)에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을 증직받았고, 숙종 37년(1711)에 문정공(文正公)의 시호를 받았으며, 정조 22년(1798)에 척화의 공을 인정받아 부조지전(不祧之典,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모시고 제사지내게 하는 특전)의 은전을 받았다. 이후 지금까지 불천위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노강서원과 반곡서원에 제향 되었다.

고택의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으며, 윤황의 6대손인 윤정진이 1730년경에 현재의 자리로 이축하면서 대대로 윤황선생 종가로 사용되고 있다. 입구 쪽으로 ‘一’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안마당이 넓은 구조이며, ‘ㄱ’자형으로 트여 있어서 여유로운 공간 구조를 보이고 있다. 안채와 아래채가 ‘ㄷ’자형을 이루고 있고, 별채로 사당과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가 잘 보존되어 있고, 툇마루의 높낮이로 연출한 리듬감이나 목재가 주는 부드러움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면서 중부지방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영문

Head House of the Yun Hwang’s Family

This is the head house of the family of Yun Hwang (1571-1639),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Yun Hwa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97 and then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During the Manchu invasions of 1627 and 1637, he strongly opposed negotiations with Qing China. Due to this, he was exiled shortly after the Manchu invasion of 1637 which had resulted in surrender. He stayed in exile only for seven months because he fell ill, after which he returned to his hometown before dying shortly thereafter. In 1675 and 1777, two Confucian academies were established to commemorate the scholarly achievements and virtues of Yun Hwang, namely Nogangseowon in Nonsan (Historic Site No. 540) and Bangokseowon in Jeonju (Jeollabuk-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11). In 1710, he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chief state councilor, the highest government position.

The first person of the Papyeong Yun Clan to settle in the present-day Nonsan area was Yun Hwang’s grandfather, Yun Don (1519-1577), who moved here because it was his wife’s hometown. After this, the descendants of the clan continued to live in the area for generations.

It is unknown exactly when and where this house was first built, but it is said that Yun Jeong-jin (1760-1821), a 7th-generation descendant of Yun Hwang, relocated the house to its current site. The head house consists of a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and auxiliary quarters. Behind the women’s quarters, there is a shrine with its own stone enclosure wall where rituals for Yun Hwang are performed each year.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윤황(尹煌, 1571~1639)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윤황은 1597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요직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과 1637년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와의 화의를 강력하게 반대하였으며, 이 때문에 병자호란 직후 유배를 당했다. 약 7개월 만에 병으로 유배지에서 풀려났고 고향에서 머물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윤황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해 논산 노강서원(사적 제540호)과 전주 반곡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호)이 각각 1675년과 1777년에 세워졌고, 1710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파평윤씨의 논산 입향조는 윤황의 할아버지인 윤돈(尹暾, 1519~1577)이다. 윤돈이 부인의 고향인 지금의 논산 지역으로 이주한 이후, 파평윤씨는 이 지역에 대대로 살고 있다.

이 집이 처음 지어진 시기와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윤황의 7세손인 윤정진(尹定鎭, 1760-1821)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현재 고택은 사랑채, 안채, 아래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 뒤쪽에는 담장을 둘러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된 사당이 있다. 사당에서는 매년 윤황을 모시는 제사를 지낸다.

갤러리

참고자료

주석

  1. 『오래된 기억, 소중한 만남』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개원 10주년 기념 2012년도 기증 기탁유물 특별전 도록,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4, 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