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재 및 옥비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유후재 및 옥비
Yuhujae Ritual House and Jade Stele of Jo Chi-u
유후재 및 옥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유후재 및 옥비
영문명칭 Yuhujae Ritual House and Jade Stele of Jo Chi-u
한자 遺厚齋 및 玉碑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 210-1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101호
지정일 1985년 8월 5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동1기
웹사이트 유후재 및 옥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유후재는 조선 성종 때 문신, 학자이며 청렴결백한 관리로 선발되었던 조치우(曺致虞, 1459~1529) 선생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선생의 호는 정우당(淨友堂),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성종 25년(149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거쳐 성균관 전적으로 성종실록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다. 그 후 중종반정 후 장령(掌令: 조선시대 사헌부의 정4품 관직)을 지내고 대구부사 재임 때 선정을 펼쳐 사옹원정(司饔院正: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을 맡아본 관청의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친 봉양을 위하여 사임하고 모상(母喪) 중 일생을 마쳤다.

옥비는 사후(死後) 나라에서 그의 청렴결백한 덕을 표창하고자 두 좌를 하사한 것이다. 현재 한 좌는 대창면 대재리 송청산(松靑山)의 유후재 안 옥비각(玉碑閣)에 안치되어 있고, 다른 한 좌는 부인의 묘소가 있는 경남 창원시 북면 지개동 청룡산(靑龍山)의 모선재(慕先齋) 안 옥비각에 안치되어 있다.

영문

Yuhujae Ritual House and Jade Stele of Jo Chi-u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 of Jo Chi-u (1459-1529),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built in 1539 by his descendants.

Jo Chi-u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94. He was renowned for his writing and participated in the compilation of the Annals of King Seongjong (r. 1469-1495). When he was governor of the Daegu area, he was highly praised for his wise governance and was bestowed the honorable title of Pure and Untarnished Official (Cheongbaengni). He was also a devoted son who resigned from his official duties at the age of 55 to take care of his elderly mother. Later, when his mother died, he was overwhelmed by grief and died shortly thereafter, even before he could complete the required two-year mourning period.

Behind the ritual house is the cemetery of the Changnyeong Jo Clan. The pavilion to the right of the ritual house was built in 1854 to protect a jade stele which was bestowed by the royal court to honor Jo’s virtuous life.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치우(1459~1529)의 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재실이다. 1539년에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조치우는 1494년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뛰어난 문장가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대구 부사를 지내는 동안에는 선정을 펼쳐,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또한 효심이 깊어, 55세가 되던 해에는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크게 슬퍼하다가 삼년상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유후재 뒷산에는 창녕조씨 문중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의 비각은 1854년에 지어진 것으로, 조정에서 조치우의 덕을 표창하고자 하사한 옥비가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