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호 원두표 묘역
원호 원두표 묘역 Tombs of Won Ho and Won Du-py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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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원호 원두표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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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s of Won Ho and Won Du-pyo |
한자 | 元豪 元斗杓 墓域 |
주소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장암리 산 1-1 |
지정(등록) 종목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8호 |
지정(등록)일 | 2004년 5월 6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원호 원두표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목차
해설문
국문
원호 묘
원호·원두표 묘역의 봉분 2기 중 위쪽에 있는 이 봉분은 원호의 묘이며, 정경부인* 상주김씨와 합장하였다. 묘 앞에는 지붕돌을 얹은 대리석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이 있다. 묘역에서 약 30m 아래에는 영조 44년(1768)에 건립된 신도비*가 있다.
원호(1533~1592)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명종 22년(1567) 무과에 급제한 후 국왕의 경호 업무를 보는 선전관에 이어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고 경원부사로 있을 때에는 여진족 니탕개의 침입(1583)을 격퇴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원도조방장*으로 부임하여 패잔병과 의병을 규합해 여주 신륵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패주하는 적병을 구미포에서 섬멸하였다. 그 공으로 경기ㆍ강원방어사 겸 여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얼마 후 강원감사 유영길의 격문을 보고 병사를 이끌고 북으로 가던 중 김화(金化)에서 왜군을 만나 분전 끝에 전사하였다. 사후 병조판서,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 정경부인(貞敬夫人) : 조선시대 정1품과 종1품 문무관의 부인에게 내려졌던 최고의 봉작
- 신도비(神道碑) :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
- 조방장(助防將) : 주장(主將)을 도와서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
- 추증(追贈) : 관료의 사후에 품계 또는 직급을 높이는 일
- 시호(諡號) : 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하는 호
원두표 묘
원호·원두표 묘역의 봉분 2기 중 아래쪽에 있는 이 봉분은 원두표의 묘이며, 정경부인* 삭령최씨와 합장하였다. 묘는 원래 영평(현 포천)에 있다가 현종 8년(1667)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묘 앞에는 지붕돌을 얹은 대리석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있다. 묘역에서 약 30m 아래에는 영조41년(1765)에 건립된 신도비*가 있다.
원두표(1593~1664)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그 공으로 정사공신 2등이 되고 원평군에 봉해졌다.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 공을 세워 전주부윤이 되고, 이후 나주목사, 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에는 어영부사로서 남한산성을 지켰고, 효종 즉위 후에는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효종의 북벌정책을 수행, 우의정을 거쳐 현종 즉위 후에는 좌의정을 역임하는 등 고위관직을 지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 정경부인(貞敬夫人) : 조선시대 정1품과 종1품 문무관의 부인에게 내려졌던 최고의 봉작
- 신도비(神道碑) :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
- 인조반정(仁祖反正) : 이귀, 김유 등 서인세력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능양군(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
- 시호(諡號) : 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하는 호
영문
Tomb of Won Ho
Among the two tombs at this cemetery, the tomb located higher on the hill belongs to the military official Won Ho (1533-1592) and his wife Lady Kim.
Won Ho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67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cluding an officer responsible for the king’s security. In 1583, Won successfully suppressed the Jurchen rebellion near the northern border. When Japan invaded Korea in 1592, he won an important battle at Silleuksa Temple in Yeoju with the army that he formed of the defeated state troops and civilian soldiers. When the defeated Japanese troops attempted to retreat, Won’s army annihilated them at Gumipo Ferry Dock, which connects the areas of today’s Yangpyeong and Yeoju. In recognition of his military feats, Won was promoted to defense commander of the Gyeonggi-do and Gangwon-do Provinces and the magistrate of Yeoju. Upon the request of Gangwon-do’s governor, Won moved with his army to the north to fight the invaders but was ambushed by Japanese troops on his way and killed in a fierce battle. He was posthumously bestowed with the titles of minister of war and second state councilor.
The stone sculptures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include a marble tombstone with a roof-shaped capstone, a table, and an incense table. To the left and right of the mound are statues of civil officials. Located about 30 m from the cemetery is a stele erected in 1768 to commemorate Won Ho’s life and achievements.
Tomb of Won Du-pyo
Among the two tombs at this cemetery, the tomb located lower on the hill belongs to the civil official Won Du-pyo (1593-1664) and his wife Lady Choe. Won Du-pyo is a grandson of the military official Won Ho.
Won Du-pyo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for helping overthrow King Gwanghaegun (r. 1608-1623) and enthrone King Injo (r. 1623-1649)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next year, he participated in the suppression of a rebellion, after which he served a number of official posts including as magistrate of Jeonju, magistrate of Naju, and governor of Jeolla-do Province.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Won also protected Namhansanseong Fortress where King Injo was taking refuge. In 1653, Won was promoted to minister of war and oversaw a punitive expedition initiated by King Hyojong (r. 1649-1659) against the Manchu Qing dynasty (1644-1912). In 1656 and 1662, Won was promoted, respectively, to the third and second state councilor, which were some of the highest official posts in the government.
Won Du-pyo’s tomb was first built in the area of today’s Pocheon and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667. The stone sculptures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include a marble tombstone with a roof-shaped capstone, a table, and an incense table. To the left and right of the mound are pillars and statues of civil officials. Located about 30 m from the cemetery is a stele erected in 1765 to commemorate Won Du-pyo’s life and achievements.
영문 해설 내용
원호 묘
이곳에 있는 2기의 봉분 중 위쪽에 있는 것은 무신 원호(1533-1592)와 부인 상주김씨의 합장묘이다.
원호는 조선시대인 1567년 무과에 급제한 후 국왕의 경호 업무를 보는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1583년에는 북방에서 일어난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패잔병과 의병을 규합해 여주 신륵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고, 이후 패주하는 적병을 구미포(지금의 양평과 여주 지역을 잇던 나루터)에서 섬멸하였다. 그 공을 인정받아 경기·강원방어사 겸 여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얼마 후 강원감사의 격문을 보고 북쪽 지역의 적들을 치기 위해 병사를 이끌고 가던 중 철원 김화 지역에서 왜군을 만나 분전 끝에 전사하였다. 사후 병조판서와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묘 앞에는 지붕돌을 얹은 대리석 묘비,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이 있다. 묘역에서 약 30m 떨어진 곳에는 원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68년에 건립된 신도비가 있다.
원두표 묘
이곳에 있는 2기의 봉분 중 아래쪽에 있는 것은 문신인 원두표(1593-1664)와 부인 삭령최씨의 합장묘이다. 원두표는 원호의 손자이다.
원두표는 조선시대인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옹립하는 데 참여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 받아 공신이 되었다. 이듬해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는 데 기여하였고, 이후 전주부윤, 나주목사, 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637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인조가 피난해 있던 남한산성을 지키기도 하였다. 1653년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효종의 북벌정책을 수행하였고, 1656년 우의정, 1662년 좌의정을 역임하는 등 고위관직을 지냈다.
묘는 원래 지금의 포천 지역에 있다가 1667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묘 앞에는 지붕돌을 얹은 대리석 묘비,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있다. 묘역에서 약 30m 떨어진 곳에는 원두표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65년에 건립된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