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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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Haewol Head House of the Pyeonghae Hwang Clan, Uljin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영문명칭 Haewol Head House of the Pyeonghae Hwang Clan, Uljin
한자 蔚珍 平海黃氏 海月宗宅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해월헌길 70 (사동리 433)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6호
지정일 2012년 10월 2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은 조선 시대의 문신인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의 종택으로, 그 이름은 황여일의 호인 ‘해월(海月)’에서 따온 것이다.

황여일의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자는 회원(會元), 호는 하담(霞潭)․해월(海月)․만귀(晩歸)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나 선조 때 변무진주사 서장관(辨誣陳奏使 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의 종사관으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2등을 받았다. 광해군 때 동래부사(東萊府使)․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으며, 가선대부 이조참판(嘉善大夫 吏曹參判)에 증직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 한 마을에 같은 성씨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마을의 높은 곳에 종가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해월종택은 뒷산을 배경으로 남쪽 방향으로 서 있고 정침(正寢), 정자(亭子), 사당(祠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방앗간채, 동쪽에는 정자와 사당이 있으며, 남쪽 앞에는 큰 마당을 사이에 두고 행랑채를 두었다.

정침은 정면 일곱 칸, 측면 여섯 칸 반 규모의 홑처마 기와집이다.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안방과 상방을 두었고 양옆으로 익사채, 중문간채, 사랑채를 연결하여 ㅁ자형(ㅁ字型)으로 배치하였다. 지붕의 형태는 정침의 양옆으로 익사채를 두고 그 정면에 중문간채, 사랑채를 두어 유연한 곡선으로 연결하였다. 단 사랑채는 따로 팔작기와지붕을 올렸다.

정자는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 반의 홑처마 팔작기와집으로,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를 두어 난간을 돌렸다. 앞쪽에는 ‘海月軒(해월헌)’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는데, 이 글씨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 이산해가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사당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 반의 홑처마 맞배기와집이다. 이곳에는 불천위(不遷位) 황여일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하여 ‘불천묘(不遷廟)’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해월종택의 구조는 울진 지역 상류 주택의 특성을 전체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영문

Haewol Head House of the Pyeonghae Hwang Clan, Uljin

Haewol Head House is the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descendants of Hwang Yeo-il (1556-1622, pen name: Haewol),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a member of the Pyeonghae Hwang Clan. Pyeonghae is a former name of the Uljin area.

Hwang Yeo-il was born in Sadong-ri Village, where this head house is located. Hwang excelled in academics from a young age and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5.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 successfully fought in many battles and was made a meritorious subject. In 1598, he traveled to Ming China (1368-1644) as an official envoy.

The head house complex consists of a gate quarters, a main quarters, a mill, a pavilion, and a shrine. It is unknown when the main quarters, mill, and shrine were built. The overall layout of the complex shows well the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upper-class residential houses of the Uljin area.

The gate quarters was built in 1993. It leads to the large outer courtyard and the main quarters, which has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In the front left and right of the main quarters are an inner gate quarters and a men’s quarters, respectively. In the back is the women’s quarters, which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and a perpendicular wing to each side. The inner gate quarters and the women’s quarters both have gable roofs, while the men’s quarters features a tall hip-and-gable roof. To the left of the main quarters is the mill.

To the right of the men’s quarters is the pavilion, which was originally built in 1588 at the base of Maaksan Mountain in Sadong-ri bu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847 by Hwang Yeo-il’s descendants. It consists of a wooden-floored room in the center, an underfloor-heated room to each side, and a wooden veranda with balustrades along the front. The building’s name plaque is said to have been personally calligraphed by Yi San-hae (1539-1609), who served as chief state councilor.

Behind the pavilion is the shrine, which is surrounded by a stone enclosure wall to separate it from the house’s living area. Enshrined inside is Hwang Yeo-il’s spirit tablet.

영문 해설 내용

해월종택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평해황씨 황여일(1556-1622, 호: 해월) 가문의 종택이다. 평해는 울진 지역의 옛 이름이다.

황여일은 이 종택이 위치한 사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났고 1585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고, 1598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 종택은 대문간채, 정침, 방앗간채, 정자,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 방앗간채, 사당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해월종택의 전체적인 구조는 울진 지역 상류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대문간채는 1993년에 지어졌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바깥마당과 정침이 있고, 정침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침의 앞쪽 왼편과 오른편에는 각각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있다. 정침 뒤쪽에 있는 안채는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날개채를 두었다. 중문간채와 안채는 모두 맞배지붕을 얹었지만, 사랑채는 높은 팔작지붕을 얹었다. 정침 왼쪽에는 방앗간채가 있다.

사랑채 오른쪽에 있는 정자는 원래 1588년 사동리 마악산 기슭에 세웠던 것을 1847년 황여일의 후손들이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고, 앞면에는 난간을 둘렀다. 해월헌이라고 쓴 현판의 이 글씨는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1539-1609)가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정자 뒤에 있는 사당은 거주공간과 구분하기 위해 따로 담장을 둘렀으며, 내부에 황여일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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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