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Goryeo White Porcelain Kiln Site in Seo-ri, Yong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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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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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oryeo White Porcelain Kiln Site in Seo-ri, Yongin |
한자 | 龍仁 西里 高麗白磁 窯址 |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산23-11번지 일원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329호 |
지정(등록)일 | 1989년 1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도자기가마 |
시대 | 고려시대 |
수량/면적 | 18,979.4㎡ |
웹사이트 |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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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고려 시대에 청자와 백자를 모두 생산했던 가마터이다. 1982년부터 3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발굴 조사 결과, 중국으로부터 자기 생산 기술이 들어온 고려 초 이후 약 150여 년간 운영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가마터는 함박산 서쪽 능선 말단부의 경사진 지형에 만든 오름가마등요(登窯)이다. 가마의 바닥과 벽체는 초기에는 벽돌로 쌓았다가 나중에는 진흙을 쌓는 것으로 조성 방법의 변화상이 확인된다. 가마 내부는 폭이 1~1.2m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한 가마의 총 길이는 83m에 이른다. 불을 대던 아궁이도 27곳이나 확인되었다.
가마의 양편에는 구릉처럼 보이는 대규모 폐기 더미가 있는데 여기에는 자기 생산 작업의 부산물인 갑발*편, 자기편이 쌓여 있다. 가마 전면의 평지에서는 자기 제작과 관련된 건물터도 확인되었다.
이 가마터에서는 초기에 청자와 백자를 비슷한 비율로 생산하다가 시기가 늦어질수록 백자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이 유적은 이러한 시기별 자기의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어 도자기 제작의 연대 설정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청자와 백자 생산 기술을 고려화하고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 고려와 조선의 자기 기술 발전에 토대를 제공했다는 큰 의의가 있다.
현재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주변에는 자기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인 땔감을 공급하던 산림, 물을 조달하던 하천, 양질의 흙을 공급하던 광산이 위치하고, 작업장 등 시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장기적인 요업이 이루어지던 문화환경적 맥락 전체를 보호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리 일대에는 10여 개소의 자기 가마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는데 이는 자기 생산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곳에서 생산된 고려 시대 자기는 개경 등 수요처로 운송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갑발(匣鉢): 그릇을 가마에 쌓을 때 그릇 위에 씌워서 그릇에 재가 앉는 것을 방지하고, 불길이 직접 그릇에 닿지 않게 하는 흙으로 빚은 뚜껑. 그릇을 포개어 굽는 것보다 질과 색이 우수하지만 많은 비용이 들어서 주로 상품(上品)과 중품(中品)의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다.
영문
Goryeo White Porcelain Kiln Site in Seo-ri, Yongin
This is a site of a kiln used for the production of celadon and white porcelain during the Goryeo dynasty (918-1392) for around 150 years during the 10th and 11th centuries.
In the Seo-ri area, there are around 10 other kiln sites. This area's environment meets the necessary requirements for ceramic production, such as forests with firewood, streams with water, and mountains with quality soil, so it was used as a kiln site for a long time. It is presumed that porcelain produced here was used in places such as the Goryeo capital.
This kiln site is a climbing kiln constructed on the west slope of Hambaksan Mountain. The bottom of kiln is made of stone bricks and the top is made of mud. It is the largest clay kiln found in Korea, measuring 83 m in length and 1-1.2 m in width, with as many as 27 fireplaces. It is the first kiln discovered in Korea that utilized stone bricks in its construction.
This kiln shows the changes in ceramic production over time. Initially, celadon and white porcelain were produced at a similar rate, but the production rate of white porcelain seems to have gradually increased. In addition, it shows how the celadon and white porcelain production technology introduced from China was adapted and further developed to produce unique Korean ceramics.
There are two hills next to the kiln, measuring about 5 m high. The hills are made of waste from the kiln, including shards of porcelain and saggars, which were used for stacking dishes in the kiln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려시대에 청자와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가 있던 곳이다. 10-11세기에 약 150여 년간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는 자기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인 땔감을 공급하던 산림, 물을 조달하던 하천, 양질의 흙을 공급하던 산이 위치하고 있어서, 장기적인 요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서리 일대에는 10여 개의 가마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고려시대의 자기는 수도인 개경 등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가마는 함박산 서쪽 능선에 만들어진 오름가마이다. 아래쪽은 벽돌로 만들어졌고 위쪽에는 진흙으로 만들어졌다. 진흙가마로서는 최대 규모로, 가마의 총 길이는 83m, 너비는 1-1.2m이고, 불을 때던 아궁이도 27곳이나 발견되었다. 벽돌가마로서는 한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례이다.
이 가마에서는 시기별로 자기 생산의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에는 청자와 백자를 비슷한 비율로 생산하다가, 점차 백자의 생산 비율이 높아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청자와 백자 생산기술을 발달시켜 고려화하였다.
가마 양쪽에는 대규모의 폐기 더미가 높이 약 5m의 구릉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는 자기 조각뿐만 아니라, 가마 안에 그릇을 쌓을 때 사용하는 갑발 조각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