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서원
용연서원 Yongyeonseowon Confucian Academy |
|
대표명칭 | 용연서원 |
---|---|
영문명칭 | Yongyeonseowon Confucian Academy |
한자 | 龍淵書院 |
주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2리 165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70호 |
지정(등록)일 | 1976년 8월 27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2동 |
웹사이트 | 용연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용연서원은 조선 1691년(숙종 17)에 건립된 서원으로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1613)선생과 용주 조경(趙絅, 1586~1669) 선생을 모셨다. 1692년(숙종 18)에 용연(龍淵)이라 이름을 지어서 사액(賜額)을 내린 서원이며 1868년(고종5)의 서원철폐령에도 헐리지 않은 것은 한음 상공의 임진왜란 당시 공로가 인정된 것이다. 이덕형은 20세 때인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요청하러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 때에는 영의정이 되었으나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의 처형과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논의에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인조 때 모든 관직을 다시 회복하였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조경은 1612년(광해군 4) 초시인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했으며 이조정랑,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끝까지 청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했고, 숙종 때 청백리에 뽑혔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설립 당시 서원의 배치는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홍삼문이 갖추어 있었으나 6·25 사변으로 사우는 반쯤 부서진 상태고 나머지 건물은 모두 불탔다. 1972년 사우를 우선 보수하고, 1986년 강당을 복원한 후 연차적으로 복원하여 서원의 규모를 갖추었으나 아직도 동재와 서재는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국문 수정
서원은 조선시대에 각 지역의 유학자들이 세운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용연서원은 이덕형(李德馨, 1561~1613)과 조경(趙絅, 1586~1669)을 모신 서원이다.
이덕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80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신으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구원병을 요청하였으며, 여러 요직을 역임하며 전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였다.
조경은 1626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27년과 1636년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사후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용연서원은 1691년에 건립되었으며, 1692년에 ‘용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의 거의 모든 사당과 서원이 철거되었지만, 용연서원은 임진왜란 때 세운 이덕형의 공로가 인정되어 헐리지 않았다.
경내의 건물들은 앞에서부터 홍살문,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탔다. 1972년 사당을 우선 보수하였고, 1986년부터 강당을 비롯한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 사액: 조선시대에 왕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
영문
Yongyeonseowon Confucian Academy
Confucian academies, called seowon in Korean, are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hich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Yongyeonseowon is dedicated to Yi Deok-hyeong (1561-1613) and Jo Gyeong (1586-1669).
Yi Deok-hy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0 and served as a civil official during the mid-Joseon perio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he was sent to Ming China with a request for reinforcements. As state councilor, he played a critical role during the war and in mitigating the social disorder following it.
Jo Gy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26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During the Manchu invasions of 1627 and 1636, he insisted on fighting the invaders to the end. He was posthumously bestowed the honorable title of Pure and Untarnished Official (Cheongbaengni).
This Confucian academy was built in 1691 and given its name by the king in 1692. In the late 19th century, most shrin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but this shrine remained untouched in recognition of Yi Deok-hyeong’s meritorious deed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The complex, from front to back, includes a red spiked gate, a main gate, a lecture hall, an inner gate, and a shrine. All the buildings except for the shrine were burned down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shrine was renovated in 1972 and starting from 1982 the rest of the buildings were reconstru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