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폐비윤씨 태실
예천 폐비윤씨 태실 Placenta Chamber of Deposed Queen Yun, Ye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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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예천 폐비윤씨 태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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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Placenta Chamber of Deposed Queen Yun, Yecheon |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174호 |
지정(등록)일 | 2016년 4월 28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수량/면적 | 1,984㎡ |
웹사이트 | 예천 폐비윤씨 태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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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태실은 왕실에서 출산이 있을 때 그 태반과 탯줄을 묻는 석실(石室)을 말한다.
폐비윤씨 태실은 성종 9년(1478)에 만들어 졌으며, 왕비가 된 지 2년 뒤 가봉(可封)되었다. 사찰 경내에서 오른쪽 편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산 중턱에 위치한다.
태실은 1930년대에 발굴 조사되어 태항아리는 경기도 서삼릉으로 이장되었으며, 현재 태항아리의 외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태항아리의 내호와 지석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태실지에는 거북모양의 기단 위에 비신이 놓인 형태의 가봉태실*비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비 태실 세 곳** 가운데 하나이자, 가봉태실비가 남아있는 유일한 사례로 조선 왕실문화의 일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가봉태실: 태실의 주인이 왕위에 오르면 새로운 비석과 각종 석물을 더하여 조성한 태실
- 세 곳의 왕비 태실: 소헌왕후, 정희왕후, 제헌왕후(폐비윤씨)
영문
Placenta Chamber of Deposed Queen Yun, Yecheon
This is the placenta chamber of Queen Yun (1455-1482), the queen consort of King Seongjong (r. 1469-1494) and the mother of King Yeonsangun (r. 1494-1506). In 1473, Lady Yun became a royal concubine of King Seongjong. After Queen Gonghye (1456-1474), the king’s first queen consort, died, Lady Yun was made queen consort in 1476. However, Queen Yun was often jealous as King Seongjong had many concubines. This led to her dethronement in 1479 after an incident in which she scratched the king’s face with her nails. She was sent to a private residence until 1482 when she was sentenced to death by poisoning.
A placenta chamber is where a nested jar containing a royal baby’s placenta and umbilical cord were enshrined.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 newborn baby’s placenta was regarded as the origin of life, and preserving it would ensure a healthy, advantageous life for the child. Because this was especially important to the royal family, they took great effort to find the most auspicious place and time to build a placenta chamber. This ritual of placenta chamber construction is unique to Korea.
In 1478, the placenta chamber of Queen Yun was made together with a stele and stone sculptures, according to the formalities required for a queen. This is one of the three remaining placenta chambers of a queen of the Joseon perio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authorities relocated most of the Joseon royal family’s placenta jars and destroyed the chambers. The placenta chamber of Queen Yun was excavated in 1930, and the placenta jar was relocated to the West Three Royal Tombs in Goyang. Currently, the placenta jar is kept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while the contents of the placenta jar and the buried memorial tablet are kept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A stele composed of a tortoise-shaped pedestal and a body stone remains at the original site of the placenta chamber.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성종(재위 1469-1494)의 왕비이자 연산군(재위 1494-1506)의 생모인 폐비윤씨(1455-1482)의 태실이다. 윤씨는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가, 성종의 첫번째 왕비인 공혜왕후(1456-1474)가 죽은 뒤 1476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성종이 후궁을 많이 둔다는 이유로 투기를 일삼았고 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일로 1479년 폐위되어 사저로 쫓겨났으며, 1482년 사사되었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녀의 태(胎)를 봉안한 태항아리를 모신 석실이다. 조선시대에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고, 태를 잘 보존하면 자녀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조선 왕실에서는 명당을 물색하고 길일을 가려 태를 봉안하였다. 태실을 세우는 이러한 의식은 한국에 유일하다.
폐비윤씨의 태실은 1478년 왕비의 격식에 맞춰 비석과 석물을 갖추어 조성되었으며, 현존하는 조선 왕비의 태실 세 곳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왕조의 태실들을 훼손하고 태항아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폐비윤씨의 태실 역시 1930년대에 발굴되었고, 태항아리는 경기도 서삼릉으로 옮겼다. 현재 태항아리의 외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호와 지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태실지에는 거북 모양의 기단 위에 몸돌이 놓인 비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