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문효세자 태실
예천 문효세자 태실 Placenta Chamber of Crown Prince Munhyo, Ye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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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예천 문효세자 태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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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Placenta Chamber of Crown Prince Munhyo, Yecheon |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산82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173호 |
지정(등록)일 | 2016년 4월 28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수량/면적 | 3,174㎡ |
웹사이트 | 예천 문효세자 태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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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태실은 왕실에서 출산이 있을 때 그 태반과 탯줄을 묻는 석실(石室)을 말한다.
문효세자(1782~1786)는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맏아들로 1784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86년 5세 때 홍역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였다.
문효세자 태실은 정조 7년(1783)에 만들어졌으며, 용문사 경내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뒷산 중턱에 위치한다.
태실은 1930년대에 발굴조사 되어 태항아리는 경기도 서삼릉으로 이장되었으며,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태실지에는 원래 아기태실비*만 남아 있었으나, 2020년 태실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봉분**을 복원하였다.
태항아리와 태지석 등의 주요 유물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으나, 조선 왕실문화의 일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아기태실비: 아기의 탄생 후 태항아리를 묻고 봉분을 만든 후 세운 비석
- 봉분: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만든 무덤
영문
Placenta Chamber of Crown Prince Munhyo, Yecheon
This is the placenta chamber of Crown Prince Munhyo (1782-1786), the eldest son of King Jeongjo (r. 1776-1800). In 1784, Crown Prince Munhyo was made heir to the throne, but in 1786, he died of measles.
A placenta chamber is where a nested jar containing a royal baby’s placenta and umbilical cord were enshrined.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 newborn baby’s placenta was regarded as the origin of life, and preserving it would ensure a healthy, advantageous life for the child. Because this was especially important to the royal family, they took great effort to find the most auspicious place and time to build a placenta chamber. This ritual of placenta chamber construction is unique to Korea.
This placenta chamber of Crown Prince Munhyo was made in 1783.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authorities relocated most of the Joseon royal family’s placenta jars and destroyed the chambers. The placenta chamber of Crown Prince Munhyo was excavated in the 1930s, and the placenta jar was relocated to the West Three Royal Tombs in Goyang. It is now kept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A stele is located to the left of the original placenta chamber, and a new burial mound was made in 2020.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정조(재위 1776-1800)의 맏아들인 문효세자(1782-1786)의 태실이다. 문효세자는 1784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86년 홍역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였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녀의 태(胎)를 봉안한 태항아리를 모신 석실이다. 조선시대에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고, 태를 잘 보존하면 자녀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조선 왕실에서는 명당을 물색하고 길일을 가려 태를 봉안하였다. 태실을 세우는 이러한 의식은 한국에 유일하다.
문효세자의 태실은 1783년에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왕조의 태실들을 훼손하고 태항아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문효세자의 태실 역시 1930년대에 발굴되었고, 태항아리는 경기도 서삼릉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태실지에는 원래 비석만 남아 있었으나 2020년 봉분을 새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