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치일리 인종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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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치일리 인종태실
Placenta Chamber of King Injong, Yeongcheon
영천 치일리 인종 태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천 치일리 인종태실
영문명칭 Placenta Chamber of King Injong, Yeongcheon
한자 永川 治日里 仁宗胎室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산24번지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제350호
지정일 2004년 6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조선시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영천 치일리 인종 태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태실(胎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반이나 탯줄과 같은 태(胎)를 보관하는 돌방을 말한다. 이 태실은 조선 제12대 왕인 인종(仁宗, 1515~1545)의 태(胎)를 보관하던 곳으로 중종 16년(1521)에 만들어졌다.

이후 인종이 죽고 난 후 명종 1년(1546)에 가봉(加封)*하였으며 숙종 6년(1680)에 보수를 하였다.

1928년에는 일제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태실의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태항아리와 각종 유물들을 경기도의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겼다. 이후 1999년 방치된 태실을 발굴조사하고 2007년에 복원하였다.

이 태실은 다른 어떤 태실보다 그 규모가 커서 웅장하고 각종 석조물의 장식이 화려하다. 또한 만들어진 연대가 분명하여 태실을 만드는 양식과 석조물 조각 기법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 가봉: 국왕의 태실을 고급스러운 석장으로 단장하는 것. 원형의 탑처럼 보이는 조형물을 가운데 세우고, 그 주변은 돌난간을 만들어 돌렸다.

영문

Placenta Chamber of King Injong, Yeongcheon

This is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Injong (1515-1545, r. 1544-1545), the 12th rule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 placenta chamber is where a nested jar containing a royal baby's placenta and umbilical cord were enshrined.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 newborn baby's placenta was regarded as the origin of life, and preserving it would ensure a healthy, advantageous life for the child. Because this was especially important to the royal family, they took great effort to find the most auspicious place and time to build a placenta chamber. This ritual of placenta chamber construction is unique to Korea.

King Injong’s placenta was originally enshrined here in 1521 after he was made crown prince in 1520. In 1546, after he took the throne as king, the placenta chamber was renovated to include various stone structures. It was later repaired in 1680.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authorities relocated most of the Joseon royal family's placenta jars and destroyed the chambers. King Injong’s placenta jar was relocated in 1928 to the West Three Royal Tombs in Goyang. The stone structures and stele, bearing the inscription “Placenta Chamber of King Injong,” were left unattended for a long time, until they were reassembled in 2007.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제12대 왕인 인종(1515-1545, 재위 1544~1545)의 태를 보관하던 곳이다.

태실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자녀의 태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석실이다.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태아가 출산된 이후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특히 조선 왕실에서는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명당을 물색하고 길일을 가려 태를 봉안하였다. 태실을 세우는 이러한 의식은 한국에 유일하다.

인종이 1520년 세자로 책봉된 이후, 1521년에 태실이 조성되었다. 인종이 왕위에 오른 이후인 1546년에 가봉하였으며, 1680년에 보수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 왕조의 태실들을 훼손하고 태항아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인종의 태항아리 역시 1928년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이곳에 남은 석비와 석물은 훼손된 채 방치되다가 2007년에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