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지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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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지산고택
Jisan House, Yeongcheon
지산고택.jpg
대표명칭 영천 지산고택
영문명칭 Jisan House, Yeongcheon
한자 永川 芝山故宅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영지길 117-9 (대창면, 지산고택)
지정번호 시도민속문화재 제139호
지정일 2010년 3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4동
웹사이트 영천 지산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선조 때 문신이자 학자인 조호익(曺好益, 1545~1609) 의 종가에서 대대로 사용하는 종택이다.

조호익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6세인 명종 15년(1560)에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 문과 초시에도 합격하였다. 그러나 선조 9년(1576)에 강동에 유배되었고 유배지에서 후학을 양성하여 관서부자(關西夫子)의 어필을 하사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배지에서 풀려나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군민을 모으고 중화와 상원 등 여러 지역에서 공을 세웠다. 그 후 성주목사를 거쳐 1595년 안주목사가 되고 이어 성천과 정주의 목사를 역임한 뒤 그만두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강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고 이후 선산부사(善山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죽은 뒤 이조판서 벼슬을 받았으며 시호는 문간이고 저서로는 「지산집」, 「가례고증」, 「주역석해」 등이 있다.

영문

Jisan House, Yeongcheon

This is the head house of the descendants of Jo Ho-ik (1545-1609), a scholar and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As a follower of the eminent Confucian scholar Yi Hwang (1501-1570), Jo left many writings on diverse topics. He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the study of rituals and compiled a commentary on the Book of Family Rituals. He also mobilized civilian armi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is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around 1603 when Jo Ho-ik moved to this village. It consists of a women’s quarters, men’s quarters, storehouse, and shrine. The wo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two rooms with under-floor heating, and a kitchen on the far left. The men’s quarters consists of a spacious wooden-floored hall on the left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on the right. The shrine is located on a slope behind the women’s quarters.

Dojamseowon Confucian Academy, which is dedicated to Jo Ho-ik, is located about 1.5 km away.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조호익(1545~1609)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조호익은 대학자인 이황(1501-1570)의 제자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예학에 관심이 많아, 『가례(家禮)』의 어려운 부분을 고증하여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을 편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기도 했다.

이 집은 조호익이 이 마을에 들어온 1603년 무렵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 사랑채, 곳간채, 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고, 맨 왼쪽에는 부엌이 있다. 사랑채는 왼쪽에 넓은 대청이 있고, 오른쪽에 방이 있다. 사당은 안채 뒤쪽 높은 곳에 있다.

이 집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조호익을 모신 도잠서원이 있다.

참고

  • 지산고택”, 디지털영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