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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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Clay Seated Buddha of Buseoksa Temple, Yeongju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영문명칭 Clay Seated Buddha of Buseoksa Temple, Yeongju
한자 榮州 浮石寺 塑造如來坐像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로 345 (부석면, 부석사)
지정번호 국보 제45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소조/불상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소조여래좌상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앉아 있는 부처의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불상은 높이 2.78m의 크기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진리의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는 불상 뒤편에 따로 나무로 만들었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얼굴은 풍만하고 두꺼운 입술과 날카로운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손모양은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이러한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소조여래좌상이 있는 건물이 극락정토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파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무량수전이라는 점과 부석사 ‘원융국사비’에 “좌우에 다른 보처(補處) 보살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 한 분만 모셨다.”라는 기록이 있다는 점에서 아미타불일 가능성이 크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다른 사찰의 불상과 달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서쪽에 모셔져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배치에 대해서는 아미타여래가 서방정토에 계시기 때문에 서쪽에 모셨다는 설, 무량수전 구조를 고려하여 내부의 공간감을 만들려는 의도라는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고려 시대 초기의 불상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면서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예술적 가치도 높다.

영문

Clay Seated Buddha of Buseoksa Temple, Yeongju

This clay statue enshrined in Muryangsujeon Hall depicts Amitabha, the Buddha of the Western Paradise. It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early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Measuring 2.78 m in height, it is the largest and the oldest extant clay Buddhist statue in Korea.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discovered during the renovation of the hall in 1916, the statue was damaged in 1358 when the hall was burned down amidst an invasion by Japanese pirates. The statue was repaired in 1376 and regilded in 1723.

Unlike most worship halls, where the altar is placed in the middle facing the facade of the building, the altar of Muryangsujeon Hall is located in the western (left) side of the hall with the statue facing the east (right). This layout reflects the belief that Amitabha resides in the pure land of the Western Paradise.

Amitabha is depicted sitting in the lotus position. The halo behind him represents an auspicious light radiating from his body. The halo is made of wood and features burning flames carved around the edges. Amitabha has a rounded face, full lips, and sharp nose that give the statue its solemn appearance. The large protuberance on the top of the Buddha’s head is a symbol of his wisdom, and the three creases on his neck represent the “three destinies” of afflictions, actions, and suffering.

영문 해설 내용

무량수전에 모셔져 있는 이 불상은 극락정토의 부처인 아미타불을 나타낸 것으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2.78m의 크기로 한국에 현존하는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1916년 무량수전 해체 수리 당시 전각 내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1358년 왜구의 침략으로 무량수전이 불에 타면서 불상 역시 손상되었고, 1376년에 보수하고 1723년에 개금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법당 내부 중앙에 불단을 두고 불상을 모시는 것과 달리, 부석사의 무량수전에는 법당 서쪽(왼쪽)에 불단을 두고 불상이 동쪽(오른쪽)을 바라보도록 놓여 있다. 이러한 배치는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정토에 머문다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불은 불단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뒤쪽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진리의 빛을 표현한 광배가 있다. 광배는 나무로 만들었고,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두꺼운 입술과 날카로운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깊게 새겨져 있다.

참고자료

  • ‘세계문화유산 부석사 안내’ 곳곳에 오류 많아, 불교신문, 2019.01.29.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755 -> 1358년 왜구의 침략으로 무량수전이 불에 타 불상도 크게 훼손되어 1376년 개금과 보수를 했다는 기록이 1612년 작성된 ‘봉황산 부석사 개연기(鳳凰山浮石寺改椽記)’에 등장하지만 설명에서처럼 조선시대에 불상의 파손된 부분을 고쳤다는 기록은 없다. 특히 불상의 팔 부분을 고치면서 현재의 항마촉지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조선시대 불상을 개금(改金)한 기록이 몇 차례 확인될 뿐이며, 만약 불상의 보수를 언급하고자 한다면 ‘고려말’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수인의 변화까지 포함할 수 있는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으로 섣불리 추정을 하여 이를 설명문에 포함시키는 것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디지털영주문화대전 http://yeongju.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379
  •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700450000&pageNo=1_1_1_1
  • 부석사 원융국사 비문, VAIROCANA,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quantgra&logNo=221096176406&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화엄정토(華嚴淨土)의 사상을 주창하여 본사(本師)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아미타불(阿彌陀佛)에 비대(媲對)하였으니 영취상(靈鷲山)으로써 칠보정토(七寶淨土)를 삼아 항상 안주(安住)하시는 보신불(報身佛)로 여겼다. 이 절은 의상조사께서 중국인 서화(西華)에 유학하여 화엄(華嚴)의 법주(法炷)를 지엄(智儼)으로부터 전해 받고 귀국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본당(本堂)인 무량수전(無量壽殿)에는 오직 아미타불의 불상만 봉안하고 좌우보처(左右補處)도 없으며 또한 전전(殿前)에 영탑(影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