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부석
영주 부석사 부석 Buseok Rock of Buseoksa Temple, 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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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주 부석사 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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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useok Rock of Buseoksa Temple, Yeongju |
한자 | 榮州 浮石寺 浮石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로 345 (부석면, 부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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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신라 문무왕 1년(661) 의상대사(義相大師)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善妙)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異敎徒)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神龍)이 나타나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래서 이 돌을 ‘부석(浮石)’이라 불렀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浮石寺)'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石龍)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 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영문
Buseok Rock of Buseoksa Temple, Yeongju
This rock is related to the founding myth of Buseoksa Temple.
Buseoksa Temple was founded in 676 by the monk Uisang (625-702) of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According to a legend, when Uisang went to Tang China in 661 for studying, he met a young woman named Seonmyo at the house where he stayed. Seonmyo fell in love with him and made every effort to get his attention, but Uisang remained devoted only to his studies and maintained his celibacy. Ten years later, when it was time for him to return home, the desperate Seonmyo threw herself off a cliff into the sea. After she died, she turned into a dragon and guarded Uisang on his way home. Later, Uisang decided to found a temple here on Bonghwangsan Mountain, but a group of villagers protested against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The dragon Seonmyo lifted a huge rock in the sky, which scared the people away so Uisang could build the temple. After this, Seonmyo is said to have transformed into a guardian stone dragon which was buried beneath the courtyard in front of Muryangsujeon Hall.
This rock is said to be the very one that Seonmyo lifted. The temple’s name, which means “Temple of the Floating Rock,” originates from this story.
영문 해설 내용
이 바위는 부석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이 있다.
부석사는 676년 신라의 고승인 의상(625-702)이 창건하였다. 의상은 661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 의상이 기거하던 집에는 선묘라는 낭자가 있었다. 선묘는 의상을 연모하게 되어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지만, 의상은 10년간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소식에 슬퍼하던 선묘는 결국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은 뒤 용이 되었고, 바닷길을 수호하여 의상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하였다. 그후 의상이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이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용이 된 선묘가 커다란 바위를 공중에 띄워 반대하는 무리들을 물리쳤고, 이에 의상은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선묘는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石龍)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 아래 묻혔다고 한다.
선묘가 띄웠던 바위가 바로 이 바위이며, 이후 절의 이름은 ‘떠 있는 바위의 사찰’이라는 뜻의 부석사가 되었다.
참고자료
- 부석사 부석,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5&cp_code=cp0203&index_id=cp02030293&content_id=cp020302930001&search_left_menu=47 ->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또한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도 있다.
- 부석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4295 -> 이미지 출처, 관련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