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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금광리 의관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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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금광리 의관댁
대표명칭 영주 금광리 의관댁
한자 榮州 金光里 議官宅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569호
지정일 2010년 3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영주 금광리 의관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의관댁은 인동 장씨 집성촌인 금광리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장여화의 5대손인 장태안이 지었다고 전하는 살림집이다. 그러나 집이 처음 건립된 시기나 수리한 내용 등에 관한 자료가 없어서 구체적인 내력은 알 수 없다. 의관댁이라는 명칭은 현재 집주인인 장재원의 증조부 장익문(張翊文)이 조선 고종 대에 중추원* 의관을 지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의관댁은 기와지붕에 평면 ‘ㅁ’ 자 모양의 건물로, 앞면 7칸, 옆면 4칸의 크기이다. 후대에 사랑채 왼쪽 부분을 늘려 지었다고 추정되지만 살림집으로는 규모가 큰 편이다. 그리고 풍수지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뒷마당에 비보 구릉(땅의 부족한 기운을 보충하려고 뒷산의 산줄기 모양과 연결되게 만든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의관댁은 고친 부분도 있지만, 평상 형태인 사랑채 마루와 사랑채를 늘려 지어 평면 모양으로 변화를 준 것, 비보 구릉 등은 의관댁의 특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금광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건립 연대가 비교적 오래된 집으로,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조선 시대 후기 가옥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의관댁은 풍광이 수려한 금광리 마을의 동쪽 앞면에 있었으나, 영주댐 건설로 현재 위치로 옮겼다.


  • 중추원: 대한제국 시기에 의정부에 속한 내각의 자문 기관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자문 기관이었음.

영문

Uigwandaek House from Geumgwang-ri, Yeongju

This house was originally located in Geumgang Village, the clan village of the Indong Jang clan. The house was built by Jang Tae-an (?-1722), a 5th-generation descendant of Jang Yeo-hwa (1566-1621), the first person from the Indong Jang clan to settle in Geumgwang-ri. There is no information available about the period of construction or renovations of this house.

The name of the house comes from the fact that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1897-1910), Jang Ik-mun (1871-1945), the great-grandfather of the current owner, served as a Royal Privy Council member, called uigwan in Korean.

The house has a square layout and is the largest historic house brought from Geumgwang-ri. At its original location, there was a small mound built behind the house that connected to the mountain behind the village, which was made according to feng shui principles to compensate for the natural lack of energy in the ground.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금광리의 인동장씨 집성촌인 금강마을에 있던 것으로, 금광리 입향조인 장여화(1566-1621)의 5세손인 장태안(?-1722)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처음 건립된 시기나 중건 내력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현 소유주 장재원의 증조부 장익문(1871-1945)이 중추원 의관을 지냈기에 ‘의관댁’이라고도 불린다.

이 집은 ‘ㅁ’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금광리에 있던 고택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원래 있던 위치에서는, 풍수지리적으로 부족한 땅의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뒷마당에 작은 언덕을 만들어 뒷산과 연결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