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이규령 신도비
이규령 신도비 Stele of Yi Gyu-r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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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이규령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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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of Yi Gyu-ryeong |
한자 | 李奎齡 神道碑 |
주소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내룡리 산9 |
지정(등록) 종목 | 여주시 향토문화유산 |
해설문
국문
이규령(자는 문서, 본관은 한산, 1625~1694)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목은 이색의 후손이며, 부는 목사 이휘조(李徽祚)이다. 조선후기 대사헌, 공조·병조참판 등을 거쳐, 형조판서 겸 도총관을 지냈고 기로소에 들어가 치사하였다.
신도비는 총 높이 336㎝에 이르는 대형 신도비이다. 대리석 비신에 새겨진 비문은 완전 마멸되었으나, 다행히 신도비 전문에 대한 기록을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여 신도비는 윤증(尹拯)이 비문을 작성하였고, 신도비 건립연도는 1700~1714년으로 추정된다.
영문
Stele of Yi Gyu-ryeong
This stele commemorates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the civil official Yi Gyu-ryeong (1625-1694). It is presumed to have been erected between 1700 and 1714.
Born into the Hansan Yi clan, Yi Gyu-ryeong was a descendant of the revered scholar and politician Yi Saek (1328-1396) and a son of the civil official Yi Hwi-jo (1603-1681). Yi passed the classics and literary licentiate examinations in 1654 and the state examination in 1662. Yi served in various official posts, including vice minister of public works, vice minister of war, and minister of punishments.
The large stele, measuring 336 cm in total height, consists of a pedestal, a body stone, and a capstone. The stele’s inscription has completely worn away, but the content of its introduction is preserved in the clan’s historical records.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the influential scholar Yun Jeung (1629-1714).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이규령(1625-1694)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이다. 1700년에서 1714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규령은 한산이씨로 고려 때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이색(1328-1396)의 후손이고 문신 이휘조(1603-1681)의 아들이다. 1654년 생원시, 진사시와 1662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공조참판, 병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신도비는 총 높이가 336㎝에 이르는 대형 비석이며, 받침돌, 몸돌,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에 새겨진 비문은 완전 마멸되었으나, 다행히 전문에 대한 기록을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비문은 당대의 대학자인 윤증(1629-1714)이 지었다.
참고자료
- “(여주)파주목사 이규령 묘·신도비 -한산이씨-”, 개미실사랑방, 네이버 블로그, 2019.06.16. https://blog.naver.com/roaltlf/221531198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