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죽주산성
죽주산성 Jukjusanseong Fort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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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죽주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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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ukjusanseong Fortress |
한자 | 竹州山城 |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 111-71 (매산리) |
지정(등록) 종목 | 경기도 기념물 |
지정(등록)일 | 1973년 7월 1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고려시대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죽주산성,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안성 죽주산성은 중부지역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길과 동서방향으로 서해로 연결되는 길이 서로 만나는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를 통제하기 위해서 삼국시대에 쌓아서 조선시대까지 사용한 산성이다.
죽주산성은 중성(본성), 외성, 내성으로 구성된 3중성이다. 죽주산성이 가진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여러 시기에 걸쳐 고쳐서 쌓으면서 만들어진 구조이다. 죽주산성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쌓은 중성은 그 높이가 6~10m에 달하며, 성벽 바깥으로 도랑을 파서 방어력을 높였다. 한강유역으로 북진한 신라가 6세기 후반 이후에 죽주산성을 쌓았고, 이후 몇 차례 고쳐 쌓았다. 이와 같이 여러 시기에 걸쳐 다시 쌓은 것은 죽주산성이 품은 시간의 켜를 보여주는 것이다.
외성은 고려 초에 축조되었는데, 신라 산성의 북벽에 새로 성벽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 고려 고종 23년(1236)에는 죽주방호별감인 송문주(宋文冑) 장군이 죽주산성에서 몽고군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을 반영하듯이 산성 내에는 송문주 장군의 사당이 설치되어 있다. 임진왜란 기간인 조선 선조 26년(1593)에는 황희 정승의 5대손인 충청병마절도사 황진(黃進)이 죽주산성에 주둔한 왜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죽주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중성 내부의 높은 지점에는 내성을 쌓아 최종적으로 3중성이 되었다. 이러한 중복된 산성의 구조뿐만 아니라 성벽을 쌓은 방식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4개의 문이 설치되었고, 남벽의 양 끝에는 각각 1개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다. 치성은 돌로 하단부를 60도 정도 경사지게 쌓아올렸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쌓은 왜성의 축조기법을 적용한 결과이다. 또한 중성에는 조선시대 화약무기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군사 시설인 포루가 설치된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죽산산성 내부의 계곡에는 6기 이상의 신라 집수시설이 배치되어 있음이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산성이 반드시 갖추어야하는 물자원과 관련된 전통 토목기술과 조경의 중요성을 보여주고자, 원형을 참고하여 집수시설의 모습을 복원하였다.
이와 같이 죽주산성은 장기간 다양한 산성의 축조방식이 확인된 전통기술의 야외박물관 같은 곳이다. 죽주산성은 삼국시대의 지정학적 중심지이자, 대몽항쟁과 임진왜란과 같은 국난극복의 상징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문
Jukjusanseong Fortress
Jukjusanseong Fortress was built in the latter half of the 6th century by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to control transportation routes and areas of military importance in the central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Due to its strategic position, the fortress remained in use until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having undergone several reconstructions, demonstrates various methods of fortress construction.
Located in the geopolitical center of the country, this fortress was the venue of several symbolic victories during times of national crisis. In 1236, during the Mongol invasions, the general Song Mun-ju successfully defended this fortress from enemy attack. In 1593,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the provincial army commander Hwang Jin (1550-1593) gained an important victory for Korea by recapturing the fortress from the enemy.
The fortress consists of a main wall, an outer wall, and an inner wall. The main wall was built in the 6th century and measures 6-10 m in height. Its defenses were reinforced by an exterior ditch. The outer wall was built in the Goryeo period (918-1392). During this time, the northern part of the main wall was rebuilt to expand the area inside the fortress.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the fortress’s defenses were increased further by building an inner wall around the highest area inside the main wall. During the Joseon period, four gates and two bastions at the opposite ends of the main southern wall were installed. The lower walls of the bastions are inclined at about 60 degrees, which is a feature adopted from fortifications built by the Japanese in the southern regions of Korea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Additionally, in response to advancements in gunpowder warfare, the fortress was fortified with guard pavilions equipped with cannons.
An archaeological excavation confirmed six water-collecting basins located along the stream inside the fortress, which were restored for aesthetic purposes and to demonstrate the fortress’s critical infrastructure. Also located inside the fortress is a shrine dedicated to General Song Mun-ju.
영문 해설 내용
죽주산성은 신라가 6세기 후반에 한반도 중부 지역의 교통 및 군사 요충지를 통제하기 위해 축조하였다.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이 산성은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번 고쳐 쌓았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산성 축조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지정학적 중심지에 위치한 이 산성은 여러 차례 국난극복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1236년에는 송문주 장군이 이곳에서 몽고군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는 병마절도사 황진(1550-1593)이 왜군을 물리치고 죽주산성을 탈환하였다.
죽주산성은 본성, 외성, 내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6세기에 쌓은 본성은 높이가 6~10m에 달하며, 성벽 바깥으로 도랑을 파서 방어력을 높였다. 외성은 고려 초에 축조되었으며, 본성의 북벽에 새로 성벽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죽주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중성 내부 높은 지점에 내성을 쌓았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4개의 문이 설치되었고, 본성의 남벽의 양 끝에는 각각 1개의 치성이 설치되었다. 치성은 돌로 하단부를 60도 정도 경사지게 쌓아 올렸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일본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쌓은 왜성의 축조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또한 본성에는 조선시대 화약무기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군사 시설인 포루도 설치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죽산산성 내부의 계곡에는 6기 이상의 신라 집수시설이 배치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산성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물 자원과 관련된 전통 토목 기술과 조경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집수시설의 모습을 복원하였다. 산성 내에는 송문주 장군을 기리는 사당도 있다.
갤러리
안성 죽주산성 현황도[1]
- ↑ 남한지역 고구려 답사: 고구려 거점 죽산 ‘개차산성’ (2), 천지일보, 2022.01.05. https://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937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