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후산정사
안동 후산정사 Husanjeongsa Study Hall, An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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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후산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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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usanjeongsa Study Hall, Andong |
한자 | 安東 后山精舍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현마을길 28-5(송리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6호 |
지정(등록)일 | 2011년 6월 2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안동 후산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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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후산정사는 조선 시대의 학자 이종수(李宗洙)를 기리기 위해 순조 18년(1818)에 지은 건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이종수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정조 4년(1780)에 지은 산천재(山泉齋)라는 서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정사 건물은 2001년에 고쳐 지은 것이며, 정사 오른쪽 앞에 있는 사당도 이때 새로 지었다.
이종수는 안동 출신의 저명한 학자인 대산 이상정과 소산 이광정 형제의 제자이다. 이종수의 호인 ‘후산’은 ‘대산과 소산의 뒤를 이을 인물’이라는 뜻이다. 이종수는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여 평생 학문을 닦고 제자를 가르치는 데 힘썼다.
정사 건물은 3개의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방 앞쪽에는 난간을 두른 누마루가 있다. 누마루 양쪽 끝에는 나무판자로 만든 출입문이 있다.
영문
Husanjeongsa Study Hall
Husanjeongsa Study Hall was established in 1818 to commemorate Yi Jong-su (1722-1797),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is said that the study hall stands on the site of a study built by Yi Jong-su in 1780 as a place to teach his students. The building was renovated in 2001.
The study hall’s name comes from Yi Jong-su’s pen name, Husan, which means “Following After the Mountains.” Here, the “mountains” refer to Yi’s teachers, the renowned scholars and brothers Yi Sang-jeong (1711-1781) and Yi Gwang-jeong (1714-1789), whose pen names were Daesan (“Big Mountain”) and Sosan (“Little Mountain”), respectively. Yi Jong-su followed the academic tradition of the eminent scholar Yi Hwang (1502-1570) and devoted his life to studying and teaching his disciples.
The building consists of three adjacent underfloor-heated rooms in the back and an elevated wooden-floored veranda with balustrades along the front. At the ends of the veranda, there are gates made of wooden boards by which the building is accessed.
영문 해설 내용
후산정사는 조선시대의 학자 이종수(1722-1797)를 기리기 위해 1818년에 지었다. 원래 이곳에는 이종수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1780년에 지은 서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정사 건물은 2001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후산정사라는 이름은 이종수의 호인 ‘후산’에서 따왔으며, ‘후산’은 ‘산을 따른다’는 뜻이다. 여기서 ‘산’은 이종수의 스승이자 저명한 학자인 이상정(1711-1781, 호: 대산)과 이광정(1714-1789, 호: 소산) 형제를 가리킨다. 이종수는 대학자 이황(1502-1570)의 학문을 계승하여 평생 학문을 닦고 제자를 가르치는 데 힘썼다.
정사 건물은 3개의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방 앞쪽에는 난간을 두른 누마루가 있다. 누마루 양쪽 끝에는 나무판자로 만든 출입문이 있다.
참고자료
- 후산정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02 -> 후산정사는 진성이씨 일직파 이종수(李宗洙, 1722~1797)가 건립한 정사이다. 이종수는 안동부 일직현에서 처사 이덕삼(李德三)과 의성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종수는 평생을 향리에서 학문 생활로 일관하였다. 2001년 사당을 새로 짓고 후안정사 곳곳을 보수하였다. 후안정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건물이다. 온돌방은 각 1칸씩 3칸이고, 누마루는 우물마루이며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의 온돌방은 앞문이 사분합문이고 뒷문은 쌍띠살문이다. 좌우 온돌방의 문은 정면이 쌍띠살문이고 옆면은 띠살문이다. 누마루 좌우에도 쌍판문이 설치되어 있다.
- 안동 후산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705860000 -> 후산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누대형 건물로서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전승 과정에서 후산 이종수가 차지하는 위상은 뚜렷하다. 대산 이상정 이후 안동 유림을 이끌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후산선생연보」에 의하면, 그가 56세가 되던 1780년(정조4)에 살던 집 뒷산에 서재를 지었는데, 규모가 5가 삼칸으로 양쪽에 방이 있었으며, 그것을 산천재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확인되며, 1818년 서재를 개축하면서 3칸을 유지하고 기와로 덮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 이종수,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464
- 호문삼종, 호문삼로 후산 이종수, 학산거사 안동문화 사랑, 네이버 카페 https://cafe.naver.com/hakga/1989 -> 이종수는 19세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의 문하에 들어가 43년 동안 돈독한 사제지의를 맺었다. 대·소산의 후란 뜻으로 이상정이 후산(后山)이라는 호를 지어주었고 이종수도 평생 스스로 이상정과 이광정의 후배로 자처하였다. 이상정 사후에는 안동 지역의 강회를 주도하였고 북부 지역 사림들의 문헌을 교정·간행하는 일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이상정이 주도했던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의 교정·보완에 적극 참여하여 간행을 주도하였다.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후산정사(后山精舍)를 짓고 독서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당대의 학자인 권구(權榘)·권덕수(權德秀)·김낙행(金樂行)·권상일(權相一) 등과 교유하였다. 이종수는 호문삼종(湖門三宗: 이종수·김종덕(金宗德)·정종로(鄭宗魯))과 호문삼로(湖門三老: 이종수·류장원(柳長源)·김종덕)의 한 사람으로 퇴계학의 정맥을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