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오류헌 고택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안동 오류헌 고택
Oryuheon House, Andong
안동 오류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오류헌 고택
영문명칭 Oryuheon House, Andong
한자 安東 五柳軒 古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기르마제길 18-15 (임하리)
지정(등록) 종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84호
지정(등록)일 1984년 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필지/4,096㎡
웹사이트 안동 오류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오류헌 고택은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 김방걸(芝村 金邦杰)의 셋째 아들인 증좌승지 목와 김원중(木窩 金遠重)이 1678년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그래서 목와고택이라고도 한다.

오류헌은 생활공간을 담장으로 구분하였으며, 문살과 마루 등은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난다. 사랑채와 대문채는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하다. 안채는 원래의 모습 그대로이고, 사랑채는 1920년에 새로 지었다. 안동시 임동면 내급(川曲)리에 있었으나, 1990년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오류헌이란 이름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을 본받고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었던 김정환(金廷煥)의 호를 따서 지었다.

영문

Oryuheon House, Andong

This house was built in 1678 by Kim Won-jung (1658-1724), the third son of the civil official Kim Bang-geol (1623-1695), after he left the family home to set up a branch family. The house was originally located in Jirye-ri, the village where the descendants of Kim Bang-geol had lived for generations, but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Imha Dam, the house was relocat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90.

The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inner gate quarters,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mill house, and shrine. The inner gate quarters, men’s quarters, and women’s quarters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center.

The name Oryuheon comes from the pen name of Kim Jeong-hwan (1827-1922), a descendant of Kim Won-jung (1658-1724) who lived in this house. Kim Jeonghwan admired a Chinese poet named Tao Yuanming (365-427), and took this poet’s pen name, namely Oryu (“five willow trees”), as his own. AIt is said that Tao Yuanming planted five willow trees in his house.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김방걸(1623-1695, 호: 지촌)의 셋째 아들인 김원중(1658-1724)이 1678년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원래 김방걸 가문이 세거하던 지례리에 지어졌지만,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9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대문채, 중문채, 사랑채, 안채, 방앗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문채, 사랑채, 안채가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오류헌’이라는 이름은 김원중의 후손으로 이 집에 살았던 김정환(1827-1922)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김정환은 중국의 시인이었던 도연명(365-427)을 존경하여 도연명의 호인 ‘오류’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도연명을 자신의 집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가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