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참의공파 세장 묘역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안동 김씨 참의공파 세장 묘역
Cemetery of the Chamuigong Branch of the Andong Kim Clan
대표명칭 안동 김씨 참의공파 세장 묘역
영문명칭 Cemetery of the Chamuigong Branch of the Andong Kim Clan
한자 安東金氏 參議公派 世葬 墓域
지정(등록) 종목 수원시 향토유산 제23호



해설문

국문

안동 김씨 참의공파 세장 묘역은 현재의 광교신도시 지역에 대대로 살던 안동김씨 문중의 묘소이다. 형조참의*를 지낸 김언침(金彦沉, 1514~1584)과 그 후손의 묘역이 크게 2개 구역으로 나뉘어 조성되어 있다.

김언침은 명종 3년(1548)에 별시에 급제하여 관직이 형조참의에 이르렀고,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아들인 김찬(金瓚, 1543~1599)은 선조 2년(1568)에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다. 대사헌, 대사간, 경기도관찰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원군을 인도하고 일본과의 외교정책에 이덕형과 함께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묘역과 석물 양식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조선 시대 묘제의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2006년에 수원시 향토유산 제23호로 지정되었다.


  • 형조참의(刑曹參議): 조선 시대 법률과 재판, 형벌 등을 담당하는 기관인 형조(刑曹)에 소속된 정3품 관직으로 판서, 참판을 도와 형조의 업무 관장에 참여함
  • 승문원(承文院): 조선 시대 외교 문서를 담당한 관청

영문

Cemetery of the Chamuigong Branch of the Andong Kim Clan

This cemetery belongs to the Chamuigong Branch of the Andong Kim clan, who lived in the area of today’s Gwanggyo New Town for many generations. The cemetery includes the tomb of the branch’s founder, Kim Eon-chim (1514-1584), who was a civil official, as well as the tombs of his descendants, including his son Kim Chan (1543-1599). Well preserved in its original state, the cemetery and its stone sculptures provide valuable information about the burial practice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was designated as Suwon Local Heritage in 2006.

Kim Eon-chim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48 and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including as the third minister of punishments. He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honorary title of chief state councilor. Kim Cha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68 and served as the governor of Gyeonggi-do Province, among other official post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 participated in the diplomatic exchange with China and greatly contributed to the peace negotiations with Japan.

영문 해설 내용

이 묘역은 현재의 광교신도시 지역에 대대로 살던 안공김씨 참의공파 문중의 묘소이다. 조선시대의 문신이었던 참의공 김언침(1514-1584)과 아들 김찬(1543-1599)을 비롯한 후손들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묘역과 석물 양식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조선 시대 묘제의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2006년에 수원시 향토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김언침은 1548년 문과에 급제한 후 형조참의를 비롯한 여러 관직을 지냈고,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찬은 1568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경기도관찰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명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였고, 일본과 강화 회담을 할 때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