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봉리 충신각
쌍봉리 충신각 Chungsingak Pavilion in Ssangbong-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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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쌍봉리 충신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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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ungsingak Pavilion in Ssangbong-ri |
한자 | 雙峰里 忠臣閣 |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110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2월 2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일곽 |
웹사이트 | 쌍봉리 충신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이 충신각은 조선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김인갑, 그의 아우 김의갑, 그리고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전사한 김시엽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김인갑은 선조 12년(1579)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 판관을 지냈으며. 김의갑은 선조 23년(1590) 무과에 급제한 후 바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 김시엽은 김인갑의 아들로 광해군 13년(1621) 무과에 급제한 후 병자호란 때 참전하였다. 이들 3인은 죽은 후에 각각 병조판서, 주부, 승정원 우승지로 추서(죽은 뒤 관직을 내려줌)되었다.
충신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옆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을 얹고 풍판(바람막이 판)을 붙인 조그마한 건물이다. 막돌로 1단의 기단을 쌓고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을 놓은 다음 기둥을 세웠다. 건물 뒷면에는 벽을 설치하고 나머지 3면은 홍살을 돌려 개방하였다.
영문
Chungsingak Pavilion in Ssangbong-ri
This pavilion, located at the entrance to Ssangbong-ri Village in Hwasun, was built in 1872 to commemorate the patriotic loyalty of Kim In-gap (1564-1593), his younger brother Kim Ui-gap (?-1593), and his son Kim Si-yeop (1589-1637) of the Gimhae Kim Clan.
Born in Hwasun, Kim and his brother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to become a military official in 1579 and 1590, respectively. In 1593, following Japan’s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y mobilized a civilian army in the Hwasun area and won several battles. Moving eastward, they fought in the Battle of Jinju, where they heroically died. Kim Si-yeop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to become a military official in 1621 and proved himself a skillful commander by suppressing a rebellion in 1624 and leading a civilian army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27. When the Manchus invaded Korea again in 1637, Kim Si-yeop and his brothers raised a civilian army and died fighting the invaders.
The commemorative pavilion has a gable roof that is enclosed at the ends. The name Chungsingak means “Pavilion of the Loyal Subjects.”
영문 해설 내용
쌍봉리 입구에 위치한 이 정려각은 김해김씨 가문의 김인갑(1564-1593)과 아우 김의갑(?-1593), 그리고 김인갑의 아들 김시엽(1589-1637)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72년에 건립되었다.
김인갑과 김의갑은 화순 출신으로 각각 1579년과 1590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화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일본군을 격퇴하며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김시엽은 1621년 무과에 급제한 뒤 1624년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 고향에서 형제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정려각은 맞배지붕을 얹고 지붕 양쪽 끝에 바람막이 판을 붙였다. 충신각이라는 이름은 ‘충성스러운 신하의 전각‘이라는 뜻이다.
참고자료
- 쌍봉리 충신각,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hwasun.grandculture.net/hwasun/toc/GC05600712
- 김인갑,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hwasun.grandculture.net/hwasun/toc/GC05601072
- 김시엽,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hwasun.grandculture.net/hwasun/toc/GC0560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