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온 선생 묘
심온선생묘 Tomb of Sim 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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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심온선생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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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Sim On |
한자 | 沈溫先生墓 |
지정(등록) 종목 | 경기도 기념물 |
지정(등록)일 | 1979년 9월 10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심온 선생 묘,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조선 시대 태종대의 문신인 심온(1375~1418)의 묘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시호는 안효(安孝)이다. 세종의 장인이자 소헌 왕후의 아버지로 관직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세종 즉위년(1418)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역모죄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을 받았고 귀국 후 수원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후 죄가 없음이 판명되어 문종 1년(1451)에 복관(復官)되었다.
묘역은 부인인 순흥 안씨와 합장한 단분(單墳) 형태로, 3단의 계단식 구성과 장명등과 문석인 등의 석물들은 15세기 묘제의 원형을 잘 보여 준다. 묘표*의 비문은 당대에 유행하던 송설체**의 글씨로 안평 대군의 필적이다. 원본은 수원광교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현 위치에는 복제본이 있다.
조선 초기 묘제의 원형이 잘 남아 있으며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고유성까지 잘 담아 내고 있어 1979년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묘표(墓表): 묘 앞에 누구나 세울 수 있는 묘비의 한 종류
- 송설체(松雪體): 고려 말기와 조선 전기에 유행한 중국 원나라 조맹부의 글씨체로, 가지런하면서도 유려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영문
Tomb of Sim On
This is the tomb of the civil official Sim On (1375-1418) and his wife Lady An, who were the parents-in-law of King Sejong (r. 1418-1450) through their eldest daughter, Queen Soheon (1395-1446). After aiding in establishment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Sim On served in various official posts, culminating in his appointment as chief state councilor upon King Sejong’s enthronement. However, that same year, he was falsely accused of committing treason during his visit to Ming China as a royal envoy and forced to commit suicide by poison upon his return to Korea. His honor was posthumously restored in 1451.
The three-tier platform and stone sculptures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namely the tombstone, lantern, and pair of civil official statues, are characteristic of 15th-century tomb design. The inscription on the tombstone was composed by the talented calligrapher Prince Anpyeong (1418-1453), who was the third son of King Sejong and Queen Soheon. The tombstone kept at the tomb is a replica of the original, which is held at Suwon Gwanggyo Museum.
영문 해설 내용
이 묘는 조선시대의 문신인 심온(1375-1418)과 부인 안씨의 합장묘이다. 심온은 조선 제4대왕 세종(재위 1418-1450)의 왕비인 소헌왕후(1395-1446)의 아버지이다. 심온은 조선 건국에 기여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세종 때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같은 해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 있는 동안 역모죄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을 받았고, 귀국 후 사사되었다. 이후 죄가 없음이 밝혀져 1451년에 복관(復官)되었다.
묘역은 3단의 계단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묘표, 장명등, 문석인 등의 석물은 15세기 묘제의 원형을 잘 보여 준다. 묘표의 비문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이자 명필인 안평대군(1418-1453)의 글씨이다. 현재 묘역에 있는 묘표는 복제본이며, 원본은 수원광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