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공 정부인 영광정씨 화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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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공 정부인 영광정씨 화관비
Tombstone of Lady Jeong
대표명칭 신면공 정부인 영광정씨 화관비
영문명칭 Tombstone of Lady Jeong
한자 申㴐公 貞夫人 靈光丁氏 碑
주소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 509
지정(등록) 종목 화성시 향토문화유산
수량/면적 1기



해설문

국문

2022

이 회관비(花冠碑)는 임진왜란 전에 세위진 유적으로 함길도관찰사 신면(申㴐)의 배위 정부인 영광정씨(靈光丁氏)의 화관비다. 1495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신의 높이 150 cm. 너비 66cm, 두께 34cm, 기단의 높이 20c㎝, 너 비95 cm, 두께 67cm로 되어 있다. 신면(申㴐, 1948~1467)은 보한재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8남 1녀 중 둘째아들로 출생하여 좌익원종3등 공신, 우부승지, 우승지, 도승지 등을 지내시고, 함길도 관찰사에부임하여, 1467년 5월 18일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다가 전사하였으며, 영광전씨(1437-1497)는 경기수군절도사를 지낸 정극근의 손녀요, 내금위사직을 지낸 정호(丁湖)의 따님으로 슬하에 1녀 2남을 낳으시니 사위가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차남 강학손(姜鶴孫, 1455~1523)이요, 큰 아들이 제군수를 지낸 용관(用灌, 1459~ 1519)이고, 작은 아들은 좌의정을 지낸 용개(用漑), 1463~1519)이다. 좌의정은 지낸 둘째 아들 이요정 용개(用漑),의 귀로 신면(申㴐)은 증영의정이요, 영광정씨는 증정경부인으로 증직된다. 화관비는 전면에 정부인정씨지묘(貞夫人丁氏之墓)라 음각되어있고 뒷면에는 12행 23열 264자로 음각되어 있으며, 글은 옹교 김전(金詮, 1458~1523, 뒷날 영의정)이 짓고 글씨는 부사정 박경(朴耕, ~1507)이 당나라 유공권체(柳公權體)로 썼다.

  • 신면의 생몰년 오류, 화관비가 세워진 시기 확인 필요.

2024

신면공 정부인 영광 정씨 화관비는 함길도 관찰사 신면(申㴐)의 부인 영광 정씨(靈光 丁氏, 1437~1497)의 묘비이다. 영광 정씨의 아버지는 내금위 사직을 지낸 정호(丁湖)이며, 어머니는 교하 노씨로 돈녕부사 노물재(盧物載)의 딸이다. 영광 정씨는 어려서부터 정숙하고 덕행이 뛰어났다. 19세에 신숙주(申叔舟)의 아들인 신면과 혼인하여 1녀 2남을 낳았는데, 딸은 강희맹(姜希孟)의 아들 강학손(姜鶴孫)과 혼인했으며, 큰아들 신용관(申用灌)은 김제군수를 지냈고, 작은아들 신용개(申用漑)는 좌의정을 지냈다.

영광 정씨의 묘비를 화관비라고 부르는 것은 비석의 머리 부분이 연잎(荷葉)과 닮았기 때문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정부인정씨지묘(貞夫人丁氏之墓)’라 쓰여 있으며, 뒷면에는 음기(陰記) 12행 23열 264자가 새겨져 있다. 비석의 글은 신용개와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학한 응교 김전(金詮)이 짓고, 글씨는 부사정 박경(朴耕)이 썼다. 비석이 건립된 연대가 새겨져 있지 않지만 영광 정씨의 사망과 매장 날짜, 글을 지은 김전의 벼슬 등을 고려할 때 1498년에 세워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화관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인 백자청화정부인영광정씨 묘지 및 지석함과 함께 조선 전기 여성의 삶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문

2022

  • Stele of Lady Jeong, Wife of Sin Myeon

This stele was erected in 1495 to commemorate Lady Jeong (1437-1497) of the Yeonggwang Jeong Clan. It stands in front of her tomb, which is located next to the tomb of her husband, Sin Myeon (?-1467),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Lady Jeong’s close male relatives were all renowned civil or military officials, serving in posts such as chief royal secretary, provincial governor, second state councilor, military official of the Inner Palace Guards, and provincial navy commander.

The stone stele consists of a pedestal, a body stone, and a capstone. It measures 150 cm in height, 66 cm in width, and 34 cm in thickness. The capstone, in particular, is ornately engraved into the shape of a lotus. As it dates to the late 15th century, is dedicated to a woman, and is in relatively good condition, this stele provides important insight into the practices by which upper-class women were commemorated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About Sin Myeon

Sin Myeon was the second son of the renowned civil official Sin Suk-ju (1417-1475). In recognition of his contribution to the enthronement of King Sejo (r. 1455-1468),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a meritorious subject in 1456 and later served various government posts, including as chief royal secretary. In 1467, he was appointed as governor of Hamgil-do Province. However, that year, a powerful local leader Yi Si-ae (?-1467) started a revolt, during the suppression of which Sin Myeon died. Sin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a chief state councilor, the highest government position.

2024

  • Tombstone of Lady Jeong

This tombstone honors Lady Jeong (1437-1497), the wife of the civil official Sin Myeon (?-1467). Presumed to date to 1498, the tombstone features an ornate lotus petal-shaped top. It is located in front of Lady Jeong’s tomb, with Sin Myeon’s tomb on the left.

Lady Jeong was known for her virtue from a young age. At the age of 19, she married Sin Myeon, son of the renowned civil official Sin Suk-ju (1417-1475). Sin Myeon became a meritorious subject in 1456 for his contribution to the enthronement of King Sejo (r. 1455-1468) and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chief state councilor after dying in the suppression of a revolt while serving as governor of Hamgil-do Province. The couple’s elder son Sin Yong-gwan served as magistrate of Gimje, while their younger son Sin Yong-gae (1463-1519) served as second state councilor. Their daughter married the son of the civil official and calligrapher Kang Hui-maeng (1424-1483).

Lady Jeong’s tomb was originally located in Gimpo but was moved to Hwaseong in 2006. During this process, four white porcelain memorial tablets calligraphed with iron oxide paint were discovered and later designated as a Gyeonggi-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The texts inscribed on the memorial tablets, together with the inscription written on the back of this tombstone,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about the life of Lady Jeong.

영문 해설 내용

2022

이 비석은 영광정씨(1437-1497)를 기리기 위해 1495년에 세워졌다. 비석은 남편인 조선시대의 문신 신면(?-1467)의 묘와 나란히 배치된 영광정씨의 묘 앞에 서 있다.

영광정씨의 가까운 남성 친척들은 모두 유명한 문신이나 무신으로, 도승지, 관찰사, 좌의정, 내금위사직, 수군절도사 등을 지냈다.

화관비는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 150cm, 너비 66cm, 두께 34cm이다. 특히 머릿돌은 연꽃 모양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15세기 말에 세워진 이 비석은 여성을 위해 세워졌고 보존 상태가 좋아, 조선 초기 상류층 여성을 기리던 방식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 신면

신면은 저명한 문신인 신숙주(1417-1475)의 둘째 아들이다. 세조(재위 1455-1468)가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456년 공신이 되었으며, 이후 도승지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1467년 함길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같은 해 함길도의 호족인 이시애(?-1467)가 일으킨 난을 진압하다가 전사하였다. 후에 영의정으로 증직되었다.

2024

이 비석은 조선시대의 문신 신면(?-1467)의 부인인 영광정씨(1437-1497)의 묘비이다. 1498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비석의 머리 부분이 연꽃잎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정씨의 묘 앞에 세워져 있으며, 그 왼쪽에는 신면의 묘가 있다.

정씨는 어려서부터 정숙하고 덕행이 뛰어났으며, 19세에 저명한 문신인 신숙주(1417-1475)의 아들 신면과 혼인하였다. 신면은 세조(재위 1455-1468)가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456년 공신이 되었다. 1467년 함길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같은 해 함길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다 전사하였고 후에 영의정으로 증직되었다. 큰아들 신용관은 김제군수를 지냈고, 작은아들 신용개(1463-1519)는 좌의정을 지냈다. 딸은 문신이자 서화가인 강희맹(1424-1483)의 아들과 혼인하였다.

2006년 원래 김포에 있던 정씨의 묘를 화성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산화철 안료로 글씨를 쓴 4장의 백자 묘지(경기도 유형문화유산)가 발견되었다. 이 묘지에 적힌 글은 화관비 뒷면에 쓰인 비문과 함께, 영광정씨의 삶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