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말주 선생의 십로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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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주선생의십로계첩
Sin Mal-ju’s Album of Paintings of the Gathering of the Ten Elders
신말주 선생의 십로계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신말주선생의십로계첩
영문명칭 Sin Mal-ju’s Album of Paintings of the Gathering of the Ten Elders
한자 申末舟先生의十老契帖
주소 전라북도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
지정일 1992년 6월 20일
분류 기록유산/서간류/간독류/간독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괄11폭
웹사이트 신말주 선생의 십로계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전기 문신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가 노년에 조직한 십로계(十老契)에 관한 사항을 정리하여 연산군 5년(1499)에 제작한 화첩이다.

신말주는 단종 2년(1454)에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연산군 4년(1498)에 70세의 나이로 은퇴한 후에는 부인의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이듬해인 연산군 5년(1499)에는 자신의 정자인 귀래정에서 본인을 포함한 70세 이상의 노인 10명이 함께 계를 결성하고 ‘십로계’라고 하였다.

십로계의 결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신말주는 직접 그린 그림과 시 10점을 모아 이 화첩을 만들었다. 계에 참여한 노인 10명의 인물도를 그리고 각 인물의 성품과 사상을 읊은 시를 적었으며, 서문에는 계를 맺은 연유와 목적 등을 기록하였다. 계원 10명이 각기 하나씩 화첩을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신말주 소장본만 전해진다.

문인들의 친목 모임을 기록한 계회도(契會圖)는 주로 16세기 이후에 유행하였는데, 십로계첩은 그보다 앞서 제작되었다. 궁중의 공식적인 모임이 아닌 문인들의 사적인 모임을 그린 기록화라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

영문

Sin Mal-ju's Album of Paintings of the Gathering of the Ten Elders

This album of portraits and poems was made in 1499 to commemorate the gatherings of 10 elderly men. It belonged to Sin Mal-ju (1429-1503),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Sin Mal-ju passed state examination in 1454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1498, he retired to Sunchang, his wife's hometown. The following year, he formed an association of 10 men, including himself, who were all over 70 years old and held gatherings in his pavilion called Gwiraejeong. This group was known as Simnogye, meaning "the association of the 10 elders."

The album contains portraits of each member and poems that describe the personalities and beliefs of each member of the group. There is a prologue that explains the reason why the group started its meetings, its goal, and so on. It is presumed that all 10 members owned a copy of the album, but only Sin Mal-ju’s copy remains.

This album has a great historical value, as it is a document about the private social gatherings of the literati. Such documents would not become common until the late 16th century.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인 신말주(1429~1503)가 노년에 조직한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 1499년 직접 그린 그림과 시 10점을 모아 제작한 화첩이다.

신말주는 1454년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1498년 은퇴한 후에는 부인의 고향인 순창으로 왔다. 이듬해인 1499년에는 자신의 정자인 귀래정에서 본인을 포함한 70세 이상의 노인 10명이 함께 모임을 결성하고 ‘십로계’라고 하였다.

모임에 참여한 노인 10명의 초상화를 그리고 각 인물의 성품과 사상을 읊은 시를 적었다. 서문에는 모임을 결성한 연유와 목적 등을 기록하였다. 10명이 각기 하나씩 화첩을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신말주의 것만 전해진다.

이 화첩은 문인들의 사적인 모임을 그린 기록화라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 문인들의 친목 모임을 기록한 그림은 주로 16세기 이후에 유행하였는데, 이 화첩은 그보다 앞서 제작된 것이다.

참고자료

  • 정훈, 「귀래정 신말주 연구」, 『한국언어문학』 92, 한국언어문학회, 2015.
  • 『세조실록』, 『성종실록』
  • 『귀래정 실기』, 귀래정 실기 간행 위원회, 1994.
→ 기존 안내문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신말주에 대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낙향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대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455년(세조 1) 계유정난의 공으로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1456년(세조 2) 대에는 사간원 정언, 사간원 우정언, 1459년(세조 5) 종사관, 사간원 우헌납, 1461년(세조 7) 예조 정랑, 1464년(세조 10) 사간원 사간, 1466년(세조 12) 사간원 대사간, 형조 참의, 1476년(성종 7) 전주부윤, 1479년(성종 10) 진주목사 이후 창원부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 첨지중추부사, 전라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순창에 머문 시간은 부인의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낙향한 1470년(성종 1)부터 다시 기록에 등장한 1476년(성종 7)까지 대략 7년 정도의 기간과 70세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난 1498년부터 죽음을 맞이한 1503년까지 6년 정도의 기간이다 .
결론적으로 그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은 절의의 인물이 아니다. 그의 절의와 은거하는 선비의 이미지는 그와 친분이 있고 세조 정권에 참여하였던 서거정과 강희맹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서거정은 신말주가 지은 정자인 귀래정에 대해 「귀래정기」를 지어 주었고, 강희맹은 「전주부윤귀래정공신도비명」을 지어 주었는데, 신말주가 세조 즉위 후 낙담하여 낙향하였으나 형인 신숙주의 강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벼슬을 하였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순창을 그리워하고 은거하려 했다고 하였다.
또한 그의 10대 후손인 신경준은 「유허비명」을 지어 그가 벼슬길에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였다. 이는 신숙주의 문집이나 연대기 자료에는 볼 수 없는 기록으로 세조 정권 당시 관직에 나아간 신말주를 변호하는 입장에서 쓴 글이다.
그러므로 기존 안내문에 있는 신말주에 대한 설명은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