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선군 묘
숭선군묘 Tomb of Yi J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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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숭선군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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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Yi Jing |
한자 | 崇善君墓 |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산2-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6호 |
지정(등록)일 | 1976년 1월 8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3,300㎡ |
웹사이트 | 숭선군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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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숭선군 묘는 인조의 다섯째 아들 숭선군 이징(李澂, ?~1690)과 그의 부인 평산 신 씨가 함께 묻힌 무덤이다.
숭선군은 인조와 귀인 조 씨 사이에서 태어나 1646년(인조 24)에 숭선군에 봉해지고, 1648년 신 씨와 혼례를 올렸다. 효종이 즉위한 후 1651년에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벌어져 강화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어머니가 사사당하기 까지 하였으나 효종이 끝까지 동생을 아껴 무사할 수 있었다. 그가 죽은 후 숙종은 3년상을 마칠때까지 나라에서 녹(봉급)을 주도록 하고 ‘효경’이란 시호를 내렸다. 왕족의 무덤을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공주에 둔 것은 숭선군의 유언때문이라고 전하며, 공주 오룡동은 숭선군 집안의 사패지였다.
- 임금이 내려준 논밭. 흔히 ‘사전賜田’이라고도 함.
영문
Tomb of Yi Jing
This is the tomb of Yi Jing (?-1690), the fifth son of King Injo (r. 1623-1649)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i Jing’s wife, Lady Sin, is also buried in the tomb mound.
Yi Jing was born between King Injo and the royal concubine Lady Jo. In 1651, Lady Jo was involved in political strife and was ordered to kill herself by drinking poison. Yi Jing was spared at the mercy of King Hyojong (r. 1649-1659), his half-brother, and was instead banished to Ganghwado Island until 1656.
It is believed that it was Yi Jing’s wish to be buried far away from the tombs of the Joseon royal family which were located around the capital. During the rebellion of 1624 when he followed his father to refuge, for a brief moment he found shelter in Gongju. It made such an impression on Yi Jing, that even after he returned to the palace, he longed to go back to Gongju. It is said that in his will he asked to be buried there. The law did not allow it, and so his tomb was originally built near the capital, but his descendants later moved it to its current location in Gongju.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인조(재위 1623-1649)의 다섯째 아들 이징(?-1690)과 그의 부인 평산신씨의 합장묘이다.
이징은 인조와 후궁인 귀인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51년 어머니가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되었지만, 이징은 이복형인 효종(재위 1649-1659)의 배려로 무사할 수 있었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1656년에 풀려났다.
왕족의 무덤이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공주에 조성된 것은 이징의 유언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징은 1624년 반란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를 따라 공주로 잠시 피신한 일이 있었다. 이후 궁으로 돌아와서도 공주를 그리워하였고, 세상을 떠날 때 공주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국법에 따라 원래 묘소는 도성 인근에 조성되었고, 이후 후손들이 이곳으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