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수원 화성 - 서북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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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서북공심돈
Northwestern Watchtower of Hwaseong Fortress, Suwon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주년 기념 특별전 도록 『성곽의 꽃, 수원화성』, 수원화성박물관, 2017.
대표명칭 수원 서북공심돈
영문명칭 Northwestern Watchtower of Hwaseong Fortress, Suwon
한자 水原 西北空心墩
주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72-1
지정번호 보물 제1710호
지정일 2011년 3월 3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 1796년(정조 20) 창건
  • 1934년 수리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성곽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墩臺)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서북공심돈은 서북쪽 성벽이 꺾이는 위치에 설치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는데 외벽에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공격 기능까지 갖추었다.

1797년(정조 21) 정월, 완성된 화성을 둘러보던 정조는 서북공심돈 앞에 멈춰 “우리나라 성곽에서 처음 지은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화성에는 모두 세 곳에 공심돈을 세웠는데 서북공심돈만이 축성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옹성을 갖춘 화서문과 함께 화성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영문

This is a watchtower for monitoring the surroundings and attacking enemies. Its Korean name, gongsimdon, means “hollow outpost.” This is because a gongsimdon conventionally has no facilities in its tall brick tower apart from an inner staircase and arrowslits in the walls. In Korea, this kind of watchtower was only constructed in Hwaseong Fortress. There were originally three watchtowers in Hwaseong Fortress, but only two remain today.

The Northwestern Watchtower is located next to Hwaseomun Gate and has maintained its original structure built in 1796. It consists of three floors and is topped with a pavilion. The brick wall has many arrowslits to ensure the enemy could not find out where the bullets were coming from. When King Jeongjo visited Hwaseong Fortress the year after it was completed, he was greatly satisfied with this watchtower and emphasized how it was the first of its kind to be built in a Joseon fortress.

영문 해설 내용

공심돈은 주변을 감시하고 적이 오면 공격하기 위한 망루이다. 공심돈이란 '비어있는 돈대'라는 뜻으로, 벽돌로 망루를 높이 쌓고 내부에는 계단을 두며 벽에는 총구멍을 냈다. 이러한 건축물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화성에는 원래 세 개의 공심돈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 개만 남아있다.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축성할 때 만든 원형이 잘 남아있다. 내부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꼭대기에는 누각을 올렸다. 벽돌로 쌓은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많이 냈는데, 이렇게 포 구멍을 많이 낸 것은 탄환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적이 모르도록 한 것이다. 화성이 완성된 이듬해 화성에 온 정조는 공심돈이 조선 성곽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강조하며 크게 만족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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