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질 선생 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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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질 선생 묘 및 신도비
Tomb and Stele of Song Jil
대표명칭 송질 선생 묘 및 신도비
영문명칭 Tomb and Stele of Song Jil
한자 宋軼 先生 墓 神道碑
지정(등록) 종목 향토유적 제8호



해설문

국문

송질(宋軼 1454~1520) 선생은 조선(朝鮮) 전기(前期)의 문신으로 자(字) 가중(可仲), 본관(본관)은 여산(礪山), 도정(都正), 공손(恭孫) 아들이다. 성종(成宗)8년(1477) 생원시, 진사시에 합격, 이듬해 알성문과(謁聖文科), 성종13년(1482) 진현시(進賢試)에 각각 급제하여 형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우찬성,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중종8년(1513) 우의정, 뒤에 영의정에 올랐다. 이에 앞서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때는 정국공신(靖國公臣) 3등이 되고 여원부원군(礪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이 된 이듬해에는 양사(兩司)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묘는 앞면과 좌우 면에 사다리형(形)으로 장대석(長大石)의 호석(護石)이 돌려져 있는데, 봉분의 높이는 1.6m, 직경 5.8m, 둘레 18m 이다. 묘 주위에는 1976년에 묘역정화사업으로 조성된 석축(石築)의 곡장(曲墻)이 둘러졌으며, 묘 중앙에는 비두(碑頭)가 투구형에 연화문(蓮花紋)을 조각한 묘비와 상석, 향로석, 그 좌우에 문인석, 망주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백(白)대리석으로 높이 120cm, 폭 50cm, 두께 12cm의 규모이다. 묘소 입구 언덕에 위치한 신도비는 팔작 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으며 비신은 백 대리석이다. 앞면 상단에는 전자(篆字)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병충분의 정국공신(秉忠 奮義 靖國公臣) 대광보국(大匡輔國), 숙정공(肅靖公) 신도비명(神道碑銘)」 이라 횡서(橫書)했고, 비제(碑題)를 「숭록대부(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겸(兼) 영경연(領經筵) 홍문관(弘文館) 춘추관(春秋館) 관광감사(觀象監事) 여원부원군(礪原府院君) 증시(贈諡) 숙정송공(肅靖宋公)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書)」라 했다. 앞면 말미에 「가정(嘉靖) 24년(乙巳) 9월 일 건(建)」 이란 음각으로 보아 이 비는 인종(仁宗)1년(1545)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은 성세창(盛世昌)이 짓고 김 노(金魯)가 글씨를 썼으며 박 영(朴泳)이 전(篆) 했다. 그 규모는 높이가 190cm, 폭 104cm, 두께 24cm이며, 상단과 하단에 톱질 자국이 크게 나있다. 묘소 부근에는 선생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한 사우(祠宇)가 있는데, 정면 2칸 후면 1칸의 맞배지붕 양식(樣式)의 건물이다.

영문

Tomb and Stele of Song Jil

This is the tomb of Song Jil (1454-1520), a civil official of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Song Jil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77 and went on to hold several high-ranking posts, including second minister of punishments, governor of Gyeonggi-do Province, and minister of personnel. In 1506, he contributed to the enthronement of King Jungjong (r. 1506-1544) and was subsequently recognized as a meritorious subject. In 1513, he was appointed to the highest government office of chief state councilor but stepped down the following year after being impeached.

The burial mound measures 1.6 m in height and 5.8 m in diameter, with a circumference of 18 m. Its base is reinforced with rectangular stone blocks to prevent collapse. A curved stone enclosure wall was constructed in 1976, surrounding the mound on the left, right, and rear. In front of the mound stand stone structures including a tombstone, table, incense table, a pair of civil official statues, and a pair of pillars. The tombstone is made of white marble and features a capstone decorated with lotus petal designs. It measures 120 cm in height, 50 cm in width, and 12 cm in thickness.

At the entrance to the tomb area is a stele erected in 1545 to honor Song Jil’s life and achievements. This stele consists of a square pedestal, a body stone made of white marble, and a capstone shaped like a hip-and-gable roof. It measures 190 cm in height, 104 cm in width, and 24 cm in thickness.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the civil official Seong Se-chang (1481-1548) and calligraphed by Kim No (1498-1548).

A shrine housing the spirit tablet of Song Jil is located nearby. The building has a gable roof and measures two bays in width by one bay in depth.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전기의 문신 송질(1454-1520)의 묘소이다.

송질은 1477년 과거에 급제한 후 형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1506년에는 중종(재위 1506-1544)이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하여 공신이 되었다. 1513년 최고위 관직인 영의정에 올랐으나, 이듬해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다.

봉분의 높이는 1.6m, 직경 5.8m, 둘레 18m 이고, 봉분 아랫부분에는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장대석을 둘렀다. 봉분의 양옆과 뒤쪽의 삼면에는 돌로 쌓은 곡장이 둘러져 있는데, 이는 1976년에 만든 것이다. 봉분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문인석, 망주석이 있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묘비는 머릿돌에 연화문을 새겼고, 높이 120cm, 폭 50cm, 두께 12cm의 규모이다.

묘소 입구에는 송질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45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이 신도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흰 대리석의 몸돌, 팔작지붕형의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가 190cm, 폭 104cm, 두께 24cm이다. 몸돌에 새겨진 비문은 문신 성세창(1481-1548)이 지었고, 김노(1498-1548)가 글씨를 썼다.

묘소 인근에는 송질의 위패를 모신 사우가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양식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