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선 연재문집 목판
송병선 연재문집 목판 Printing Woodblocks of Yeonjae munjip (Collected Works of Song Byeong-s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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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송병선 연재문집 목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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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Printing Woodblocks of Yeonjae munjip (Collected Works of Song Byeong-seon) |
한자 | 宋秉璿 淵齋文集 木板 |
주소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하임실길 68 (연교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2호 |
지정(등록)일 | 1996년 3월 11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판목류 |
수량/면적 | 53권 24책 |
웹사이트 | 송병선 연재문집 목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송병선 연재문집 목판은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의 문집을 판각하기 위해 새긴 목판으로, 문집은 1906년에 후손과 제자들이 간행하였다.
송병선은 뛰어난 학문과 덕행으로 고종의 스승이 되었으나 관직에는 별 뜻이 없이 오직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1905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서울로 올라가 시정 개혁과 일본에 대한 경계를 건의하였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고향으로 강제 압송되었다. 송병선은 그 울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문집 목판이 제작되었다.
문집에는 왕도 정치의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내용과 유학을 부흥하여 시정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집은 성리학의 정통을 이은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영문
Printing Woodblocks of Yeonjae munjip (Collected Works of Song Byeong-seon)
These woodblocks were made in 1906 to print the collected works of the prominent Confucian scholar and patriot Song Byeong-seon (1836-1905, pen name: Yeonjae). The woodblocks were produced by his descendants and students.
Known as a prominent scholar and a man of many virtues, Song Byeong-seon was offered several high-ranking official posts including that of Emperor Gojong’s (r. 1863-1907) personal teacher, which he declined to focus on his studies. When Korea was forced to sign the Japan-Korea Protectorate Treaty of 1905, thus losing its sovereignty, Song traveled to Seoul and appealed to the emperor demanding government reforms and measures to secure the state from Japan. However, his demands were not accepted, and he was forcibly escorted home. Distraught with the outcome, Song chose to end his life by taking poison.
In the Collected Works of Song Byeong-seon (Yeonjae munjip), Song argues for the reinforcement of governance based on kingly rule, the promotion of Confucianism, and the reformation of government administration. Thus, the Collected Works are considered to continue the legitimate succession of neo-Confucianism.
영문 해설 내용
이 목판은 저명한 유학자이자 애국자인 송병선(1836-1905, 호: 연재)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1906년에 후손과 제자들이 새겼다.
송병선은 뛰어난 학문과 덕행으로 고종(재위 1863-1907)의 스승 등으로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오직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한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서울로 올라가 왕에게 시정 개혁과 일본에 대한 경계를 건의하였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고향으로 강제 압송되었으며, 송병선은 그 울분을 참지 못해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집에는 왕도 정치의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내용과 유학을 부흥하여 시정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집은 성리학의 정통을 이은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자료
- 송병선 연재문집 목판, 디지털거창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geochang.grandculture.net/geochang/toc/GC063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