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 성탑(원불교 익산성지)
소태산 대종사 성탑 少太山 大宗師 聖塔 Sacred Pagoda of the Founding Ma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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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원불교 익산성지 |
해설문
국문
소태산 대종사 성탑은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少太山 大宗師 朴重彬, 1891~1943)의 유해를 모신 5층 석탑이다. 1943년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한 후 일본 경찰의 감시로 다비(茶毘)해서 공동묘지에 임시로 안장하였다가 1949년에서야 탑을 세웠다. 성탑은 익산 황등 지역의 화강석으로 조성을 하였다. 연화를 돋을새김한 기단 위에 몸돌을 세웠는데 1층에는 둥그런 돌을 올리고 그 안에 유해를 봉안했다. 그 위로는 4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쌓았는데 지붕돌받침은 없다. 이 탑은 전통적인 석탑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연꽃, 일원상* 등의 문양이나 형태 등은 원불교적 특징을 보여준다.
- 일원상(一圓相): 원불교에서는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 동그란 원으로 표현된 일원상을 내세움.
영문
Sacred Pagoda of the Founding Master
- Stupa of Master Sotaesan으로 표기했으나 원불교 익산성지 측 요청에 따라 위의 명칭으로 수정함.
This pagoda enshrines the remains of Bak Jung-bin (1891-1943), the founding master of Won-Buddhism. The remains of Bak Jung-bin were cremated and temporarily buried at a nearby cemetery due to the interference of the Japanese police. In 1949,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1910-1945), this pagoda was built to enshrine the remains.
The pagoda was made of granite sourced from the Hwangdeung area in Iksan. It consists of a base engraved with lotus designs, five sets of body and roof stones, and a decorative top. The remains of Bak Jung-bin are enshrined inside the spherical first-story body stone. The use of a spherical body stone is an embodiment of the Il-Won-Sang (One Circle Image), which is worshipped in Won-Buddhism as the personification of the ultimate absolute universal truth.
영문 해설 내용
이 탑은 원불교를 창시한 박중빈(1891-1943)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박중빈의 유해는 일본 경찰의 간섭으로 인해 화장 후 인근의 공동묘지에 임시로 안장되었다가, 해방 이후인 1949년에서야 이 탑을 세웠다.
탑은 익산 황등 지역에서 나오는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연꽃 문양을 새긴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중빈의 유해는 둥근 공 모양으로 된 1층 몸돌 안에 모셔져 있다. 전통적인 불탑의 기본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원불교에서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원 문양을 새겼다.
참고자료
- 원불교 익산성지, 디지털익산문화대전 http://iksan.grandculture.net/iksan/toc/GC07500482 -> 성탑은 박중빈이 열반 후 묻힌 곳으로, 1949년 세워졌다. 황등석으로 만들었고, 기단은 연화를 양각하였으며 5층 탑신과 개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종사성탑(大宗師聖塔)’이라 각명되어 있다.
- 성보 제11호 소태산 대종사 성탑, 원불교 소개 https://guide.won.or.kr/pages/sungji/iksan/10 ->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위업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성해(聖骸)가 모셔져 있습니다. 원기 28년(1943) 6월 1일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하자 일경(日警)의 간섭으로 인해 부득이 장례식을 간소화하고 성해 또한 화장(火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장한 성해는 49일 동안 조실에 안치하였다가 49재 후 북일면 금강리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는데, 해방이 되자 이듬해인 원기 34년(1949) 이곳으로 모셔와 성탑을 조성하고 성해를 안장했습니다. 성탑은 황등 화강석으로 조성하여 연화를 양각한 기단 위에 연화대석을 받치고 원석(圓石)을 올려 그 안에 성해를 봉안한 후 5층 탑신과 개석을 쌓고 ‘大宗師聖塔’이라고 각명하였습니다. 원기 72년(1987) 성업봉찬 사업의 일환으로 주변을 정비하고 소태산 대종사 10상, 사은(四恩) 친필과 게송(偈頌)을 부조로 장엄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 [사진으로 읽는 교사이야기] 소태산 대종사 성탑의 변천사, 원불교신문, 2020.10.9. http://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854 -> 원기34년 4월 25일 ‘대종사 성업봉찬회’사업의 일환으로 영모원 송림안 현 위치에 대종사 성해(聖骸)를 모시고 성탑을 봉건하면서, 대종사 열반 후 6년 만에 총부 경내 성탑에 모시게 된다. 제1대 성업봉찬보본사업이 시작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 처음 성탑을 봉건 할 당시에는 성탑의 모습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성탑 주위로 석물을 세우고, 그 석물에 구멍을 내 쇠사슬을 이어진 모습이 현 소태산 대종사 성탑의 첫 모습이었다. / 소태산 대종사 성탑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경위는 원기73년 원불교창립 제2대 및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 성업봉찬회가 진행되면서이다. 쇠사슬로 이은 석물을 들어내고, 주변에 병풍석을 세운 뒤 동판으로 대종사십상(大宗師十相)을 새겨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