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성주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in Geumbong-ri, S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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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성주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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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in Geumbong-ri, Seongju |
한자 | 星州 金鳳里 石造毘盧遮那佛坐像 |
주소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금봉1길 67 (금봉리) |
지정(등록) 종목 | 보물 제1121호 |
지정(등록)일 | 1992년 1월 15일 |
분류 |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1구 |
웹사이트 | 성주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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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 그 자체를 형상화한 부처이다. 이 불상이 비로자나불임은 불상의 손 모양이 오른손으로 왼손의 검지를 감싸고 있는 지권인(智拳印)인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성주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 상태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불상이 있는 곳은 옛 절터임이 밝혀졌으나, 이에 대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다. 198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92년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승격되었다.
이 불상은 불상을 올려 놓는 대좌(臺座)와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양식이 비슷하며, 9세기 후반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영문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in Geumbong-ri, Seongju
This stone statue depicts Vairocana, the Cosmic Buddha, who is the personification of the absolute universal truth. It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9th century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The pavilion housing the statue was constructed in the 1990s.
Vairocana is depicted clasping his left index finger with his right hand, which is his distinguishing hand gesture. He is seated on a three-tier pedestal that features six lions engraved on its cylindrical middle tier. The halo behind the statue represents the auspicious light radiating from the Buddha’s body.
It is presumed that a Buddhist temple once stood nearby, although its name and history remain unknown.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나타낸 것으로, 9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불상이 모셔진 보호각은 1990년대에 세운 것이다.
비로자나불의 오른손이 왼손 검지를 감싸고 있는데, 이러한 손 모양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3단으로 되어 있으며, 원기둥 모양의 중간 받침돌에 총 6마리의 사자가 새겨져 있다. 불상의 등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불상이 위치한 인근에 원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절의 이름이나 내력은 전해지지 않는다.
참고자료
- 성주군-금봉리사지,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보고서 下 경상북도』, 문화재청, 2015, pp.124-131 -> 2013년 사역 추정지 입구 일부지역이 시굴조사되었다. / 사역의 최상단에는 불상 보호각과 샘이 있다. / 2013년에 불상 진입로 개설을 위한 시굴조사가 시행되었으나 원 지형이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2014년 진입을 위한 목재 계단을 새로 설치했다. / 유물은 불상이 있는 4단(꼭대기)과 3단 평탄지에 집중되어 있고, 통일신라~조선 후기의 와편과 토기편 등이 있다. / 불상은 현재 사역 최상단 보호각 내에 봉안되어 있다. 불상은 지대석을 제외한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다. 안면부의 눈과 코는 인위적으로 손상한 흔적이 확인되며 머리는 나발이고 육계가 얕게 솟아있다. 이마에 백호공이 있고 목에는 삼도가 명확하다. / 광배는 당초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외곽에 화염문이 새겨져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대석은 중앙이 볼록한 원통형으로 운문 사이에 총 6마리의 사자를 새겼다. / 이 불상은 9세기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던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적 범주에 포함되며,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과 유사한 도상적 특징을 보여준다. / 보호각 주변에 있던 치석재 4기 중 2기는 보호각 계단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 성주 금봉리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개인 블로그, http://egloos.zum.com/hanulh/v/4943365 -> 전하는 이야기로는 지금부터 150여 년 전 한 노인의 꿈에 나타나 이 불상이 발견되자 마을 사람들은 당집을 세워 모셔다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150년 전이라면 진주민란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서 민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그 당시 당집에 불상을 모신 것은 혼란스런 사회로 고통받던 마을 사람들이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즉, 사회적 혼란과 참담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기 위해 불상을 동신(洞神)으로 모신 것이었겠지요. 그 후 한국전쟁 후에는 무속인이 관리해 왔고, 1994년에 보물 제1121호로 지정되면서 현재의 보호각에 모시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 지역 소재 문화재로 문화관광 콘텐츠를 더하다 - 6회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성주신문,2018.5.29. http://m.seongjuro.co.kr/view.php?idx=37444 -> 금봉리 마을회관 관계자는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인데, 얼굴 부분의 마모가 심한 것은 예전 마을주민들이 부처님에게 소원을 빌면서 눈과 코를 만지다 보니 손길을 많이 타서 변색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몇 년 전만해도 보물이라는 불상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인근 사찰에서 불상 주변 토지를 매입하고 관리권을 요구하는 등 주민들과 갈등이 이어지기도 했다"며 "군에서 1993년 보호각을 지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고 사찰 건립은 불가능하다고 결정하면서 일단락됐다"고 말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뤄진 팔각원당대좌로 사자와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중대의 북 모양이나 상대·하대에 새겨진 연꽃무늬 등 표현기법을 볼 때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불상의 눈과 코는 인위적으로 손상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 현재 이 불상은 사역 제일 꼭대기에 있는 보호각 내에 모셔져 있다. 이전까지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관리되어 오다가 보물 승격(1994년) 이후 전각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보호각 주변에 4점의 석재가 있었고, 이 중 2점은 보호각의 계단석으로 사용하고 있다.
- 과거에 쌓은 석축이 곳곳에서 확인되며, 2013년에 실시한 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기와와 자기 조각들이 출토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