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면의 은행나무
성당면의 은행나무 Ginkgo Tree of Seongdang-m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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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성당면의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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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inkgo Tree of Seongdang-myeon |
한자 | 聖堂面의 銀杏나무 |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성당로 759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109호 |
지정(등록)일 | 2000년 11월 28일 |
분류 |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
수량/면적 | 1주 |
웹사이트 | 성당면의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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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성당포구마을에 자리한 이 은행나무는 높이 약 18m, 가슴 높이 둘레 약 8.5m로 큰 나무이다. 수령은 약 400~5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당포구는 조선 현종 3년(1662)에 조세로 바친 곡식을 보관하고 배로 운송하기 위해 성당창(聖堂倉)이라는 조운창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이때부터 조운선의 무사 항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포 별신제*’를 순풍당이라는 신당(神堂: 신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고종 32년(1895) 성당창이 폐지되고 순풍당이 무너지자, 마을 공터에 있는 이 은행나무와 옆 느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한국전쟁 이후 명맥이 끊겼으나, 마을 사람들의 구전을 바탕으로 1997년부터 다시 당산제를 재현하고 있다. 은행나무가 민간신앙에 쓰인 것은 보기 드문 사례로서 민속적인 가치가 높다.
- 별신제(別神祭) : 무당이 주관하여 마을 수호신에게 드리는 제사
- 당산제(堂山祭) : 마을 대표가 주관하여 마을 수호신에게 드리는 제사
영문
Ginkgo Tree of Seongdang-myeon
The ginkgo (Ginkgo biloba L.) is a tree considered to be a living fossil because it has existed for 270 million years. As its foliage creates a wide shaded area, the ginkgo is typically planted along the road and at village entrances.
This ginkgo tree in Seongdang-myeon is presumed to be more than 500 years old. It is quite large, measuring about 18 m in height and 8.5 m in circumference at chest level.
In 1662, a storehouse called Seongdangchang was built in Seongdang-myeon to store grain taxes and transport them to the capital by boat. Following the construction of the storehouse, a shrine dedicated to the guardian deities of the village was built as well, and rituals for safe sailing and the wellbeing of the village began to be performed. The storehouse was shut down in 1895, and the shrine collapsed in the following years. After this, the rituals were performed in front of the saw-leaf zelkova tree that grows next to this ginkgo tree. This tradition was discontinued after the Korean War (1950-1953) but was resumed in 1997 according to the locals.
영문 해설 내용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성당면에 자리한 이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5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약 18m, 가슴 높이 둘레는 약 8.5m로 큰 나무이다.
성당면은 전국에서 조세로 바친 곡식을 보관하고 배를 이용해 한양까지 운송하기 위해, 1662년 성당창이라는 창고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성당창이 설치된 이후 이 마을에서는 마을 수호신을 모신 신당을 마련하고, 안전한 항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895년 성당창이 폐지되고 신당이 무너진 이후에는 이 은행나무와 옆에 있는 느티나무에서 제사를 지냈다. 제사는 한국전쟁 이후 명맥이 끊겼다가, 마을에 구전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1997년부터 다시 지내고 있다.
참고자료
- 성당면의 은행나무, 디지털익산문화대전 http://iksan.grandculture.net/iksan/toc/GC07500461 -> 1890년(고종 27)~1895년(고종 32) 사이 조창에 기능이 상실한 뒤 별신제를 지내던 순풍당이 무너지자 별신제를 대신 하여 성당포구에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한국전쟁 이후 명맥이 끊겼으나 1997년 윤계한을 비롯하여 70세 이상의 마을 사람들의 구술을 중심으로 1997년 익산문화원에서 마을의 공터에 있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에 치성을 올리는 당산제를 재현하였다.
- 제20회 성당포구 별신제 10월 31일 열려, 익산신문, 2019.11.1. http://www.iksannews.com/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262&idx=45909 -> 성당포구 마을은 그 옛날 성당창이 설치됐던 곳으로 이곳에서 한양 마포나루까지 세곡미를 싣고 조운선이 출발했던 곳이다. 자연히 조운선의 무사 항해와 풍년·풍어를 기원하는 별신제가 태동됐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성당창이라는 조창이 폐쇄되면서 성포별신제는 역사 속으로 묻혀 잊혀져 갔다. 이것을 익산문화원의 초대 원장인 인도 이인호 원장이 조사복원해 1999년 제1회 별신제를 거행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포별신제의 특징은 허수아비 화형식이다. 일반적으로 허수아비는 사람의 나쁜 운수를 대속시키기 위한 것이며 또 나쁜 운수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을 대신해 불에 태우거나 물에 띄워 보낸다.
- 성포 별신제, 디지털익산문화대전 http://iksan.grandculture.net/iksan/toc/GC07500544 -> 성당포구는 1662년에 조세미(租稅米)의 저장과 운반을 위해 성당창(聖堂倉)이 건립된 이래로 조선 후기 내내 한양으로 대동미를 운반하던 핵심적인 포구였다. 당시 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빌며 당산제를 지내다가, 1719년 조운선이 당진 앞바다에서 난파되어 현감이 파면되고 지방민들은 조세미를 다시 내야 하는 피해가 발생한 이후로는 별신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895년 성당창의 조창이 폐쇄되면서 별신제도 지속할 힘을 잃었다. 성당창의 폐쇄와 거듭된 흉년으로 성포마을의 경제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규모가 비교적 컸던 별신제 대신에 마을 공터에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에 치성을 올리는 당산제가 행해졌다. 별신제를 지내던 순풍당도 1984년 태풍으로 무너지자 1980년대를 고비로 당산제도 중단될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쇠퇴의 길을 걷던 중, 익산문화원에서 1999년부터 다시 성포 별신제를 재현하는 행사를 기획하였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 순풍당 재건, 제의 절차 고증 등 전승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 후로 매년 익산문화원 관계자들을 비롯하여 무속인, 마을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포 별신제를 지내는데, 2001년에 재현된 성포 별신제는 성당마을에서 지신밟기를 행하고 무속인들이 모여 제사와 굿놀이를 벌이며, 마지막에 허수아비를 불에 태우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 제의 날짜는 과거에는 정월 초나흗날이었으나, 현재는 제의 날짜를 특정하지 않으며 2019년에는 10월 31일에 열렸다.
- [전북]2020, 근속휴가 – 1. 익산 성당포구 은행나무, 생에 대한 진한 애착,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jvj24601/222168758841 -> 실제 답사 사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