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탈해왕 탄강 유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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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탈해왕 탄강 유허
Historic Site Related to King Talhae
석탈해왕 탄강 유허,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석탈해왕 탄강 유허
영문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King Talhae
한자 昔脫解王 誕降 遺墟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538-1번지 7필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79호
지정(등록)일 1988년 9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순절지
수량/면적 16,891㎡
웹사이트 석탈해왕 탄강 유허,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신라 왕실의 3성(姓) 가운데 첫 석씨 왕인 제4대 탈해왕(재위 57~80)이 출현하였다고 전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진한 아진포(阿珍浦), 『삼국유사』에는 계림 동쪽의 하서지촌 아진포(阿珎浦)라 한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 사람으로, 왕비가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이 이를 버리려 하자 왕비가 비단으로 알을 싸서 바다에 띄워 보냈는데, 붉은 용이 이를 호위하였다. 이윽고 아진포구에 이르렀을 때 까치들이 우짖어서 발견하였으므로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자를 떼어내어 ‘석(昔)’으로 성을 삼고, 궤(櫃)를 풀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脫解)’라 하였다고 한다.

이후 탈해는 남해왕(南解王, 재위 4~24)의 사위가 되었고, 유리왕(儒理王, 재위 24~57)의 뒤를 이어 신라 4대 왕이 되었다. 가야국을 찾아가 수로왕과 내기를 벌이거나 기묘한 꾀를 내어 호공의 집을 빼앗았다는 등의 설화가 전해 온다.

조선 헌종 11년(1845)에 하마비(下馬碑)와 땅을 하사하였으며, 석씨 문중이 유허비(遺墟碑)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 다파나국(多婆那國): 용성국, 정명국, 완하국, 화하국이라고도 하며 왜국(倭國)의 동북 1,000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위치는 알 수 없다. 탐라국과 발음이 비슷해서 제주도를 다파나국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King Talhae

This site is said to be the birthplace of King Talhae (r. 57-80), the fourth ruler of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King Talhae was the brother-in-law of his predecessor King Yuri (r. 24-57). He was therefore of a different clan, the Seok Clan, than the previous kings, who were of the Bak Clan. King Talhae is said to be the son of the king of a faraway land called Dapana. He was born as an egg, which his father considered an unlucky omen, so his mother put the egg in a box with jewels and sent it out to sea. It eventually came ashore at Ajinpo Port in the territory of the Silla kingdom. A fisherman found the egg, inside which was a baby boy, who grew up to become Talhae.

This site has been commemorated since 1845 when King Heonjong (r. 1834-1849)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estowed a dismounting post and land to the Seok Clan, who then erected a commemorative stele and pavil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