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회보 애민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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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회보 애민선정비
Stele of Seo Hoe-bo
대표명칭 서회보 애민선정비
영문명칭 Stele of Seo Hoe-bo
한자 徐晦輔 愛民善政碑



해설문

국문

서회보 애민선정비는 1911년 당시 충주 군수인 서회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충주시 성내동에 세운 비석이다. 이후에 도시개발을 추진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서회보(1849~1919)는 1908년부터 대한제국 충주 군수와 충주공립보통학교장을 겸임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 후에도 조선총독부 충주 군수로 임명되어 1917년까지 근무했다. 1912년에는 일본으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메달)을 받았으며, 1916년 7월부터 약 6개월간 충청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지냈다. 1917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로 임명되어 1919년에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서회보는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 발표한 「제1기 친일반민족행위자 106인」에 포함되었다.

친일 청산 관련 법규에 따라 이 안내판을 세운다.

영문

Stele of Seo Hwe-bo

This stele was erected in 1911 to commemorate Seo Hoe-bo (1849-1919) for his service as magistrate of Chungju. The stele was originally located in Seongnae-dong bu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due to urban development.

Seo Hoe-bo was appointed to the posts of magistrate of Chungju and principal of Chungju National Primary School in 1908. After Japan’s forced annexation of Korea in 1910, he was authorized by the colonial authorities to continue serving in his posts, where he remained until 1917. In 1912, Seo received a Korea Annexation Commemorative Medal, and beginning in July 1916, he served for six months as a interim member of the Chungcheongbuk-do Provincial Land Survey Committee. In 1917, he was promoted to a post in the colonial government’s Central Advisory Council, where he served until his death in 1919.

In 2006, he was listed among 106 Koreans who were found by the Presidential Committee for the Inspection of Collaborations for Japanese Imperialism to have collaborat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충주 군수인 서회보(1849-1919)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11년에 세워졌다. 원래 성내동에 세워졌다가 이후 도시 개발을 추진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서회보는 1908년부터 충주군수와 충주공립보통학교장을 겸임하였다. 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한 이후에도 조선총독부로부터 충주군수로 임명되어 1917년까지 근무했다. 1912년에는 일제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메달)을 받았으며, 1916년 7월부터 약 6개월간 충청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지냈다. 1917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로 임명되어 1919년에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서회보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6년에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