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구병희 가옥
서천 구병희가옥 Gu Byeong-hui’s House, Seo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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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서천 구병희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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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u Byeong-hui’s House, Seocheon |
한자 | 舒川 丘秉喜家屋 |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24호 |
지정(등록)일 | 2019년 8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지정구역 2,035㎡ |
해설문
국문
구병희 가옥은 참봉 구병희(丘秉喜, 1886~1981)가 일제강점기인 1918년과 1933년에 지은 집이다. 이 집은 넓은 수왕들을 바라보며 ‘바위재’ 언덕 아래에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았지만 정자와 창고 등 더 많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구병희는 평해 구씨(平海 丘氏)로 고종 9년(1905)에 경기전* 참봉을 지냈다. 평해 구씨가 서천에 자리를 잡은 것은 1500년대 초의 일이고, 그의 후손들은 문산, 시초, 마서 등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구병희는 ‘천석꾼’으로 불릴 만큼 큰 부자였는데, 생활이 어려운 시초면 사람들의 세금을 대신 내주는가 하면,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등 베푸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집의 안채는 1918년에, 사랑채는 1933년에 각각 지어졌다. 건물의 목재를 조립한 형태가 일반 민가에서 쓰지 않는 복잡한 7양가(樑架)** 방식인데다가 안채의 규모도 큰 편이어서 동헌*** 건물을 옮겨 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랑채는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양식이 섞여 있는 모습이다.
-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
-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의 숫자가 일곱 개인 집.
- 조선 시대 고을 수령이 정무를 보던 관청 건물.
영문
Gu Byeong-hui’s House, Seocheon
This house was built in 1918 and 1933 by Gu Byeong-hui (1886-1981) of the Pyeonghae Gu cl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Pyeonghae Gu clan has lived in the Seocheon area for many generations and formed more than ten clan villages since Gu Maeng-jeon moved here in the early 16th century.
Gu Byeong-hui was a very wealthy and generous man who helped poor people pay their taxes and founded educational facilities. In 1905, he was entrusted to administer Gyeonggijeon Shrine (Historic Site No. 339), which held a portrait of King Taejo (r. 1392-1398), the founding king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house faces southeast towards the wide Suwangdeul Field. The residence currently consists of only a men’s quarters and women’s quarters, but it originally also had a pavilion, a warehouse, and other buildings. The women’s quarters, built in 1918, is quite large in size and features intricate wooden structures, which is uncommon for private residential buildings, and it is said that the building was made from the disassembled parts of a magistrate’s office. The men’s quarters was built in 1933 and combines traditional Korean and Japanese architectural design.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평해구씨 가문의 구병희(1886-1981)가 일제강점기인 1918년과 1933년에 지은 집이다. 평해구씨는 16세기 초에 구맹전이 처음으로 서천 지역에 입향한 이후로 후손들이 대대로 살며 10여 개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구병희는 큰 부자였는데, 생활이 어려운 마을 사람들의 세금을 대신 내주는가 하면,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등 베푸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1905년에는 조선 태조(재위 1392-1398)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사적 제339호)의 관리를 맡기도 하였다.
이 집은 넓은 수왕들을 바라보며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았지만, 원래는 정자와 창고 등 더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1918년에 지어진 안채는 목재를 조립한 형태가 일반 민가에서는 쓰지 않는 복잡한 방식인데다가 규모도 큰 편이어서 동헌 건물을 옮겨 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랑채는 1933년에 지었으며,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양식이 섞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