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 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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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 수표
Water Gauge at Cheonggyecheon Stream, Seoul
서울 청계천 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울 청계천 수표
영문명칭 Water Gauge at Cheonggyecheon Stream, Seoul
한자 서울 淸溪川 水標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6, 세종대왕기념관 (청량리동)
지정번호 보물 제838호
지정일 1985년 8월 9일
분류 유물/과학기술/계측교역기술용구/도량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서울 청계천 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물의 높이를 재는 수표는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 1441년(세종 23) 청계천에 설치했다. 이에 대해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돌로 만든 수표에 척촌(尺寸)의 숫자를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수표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수표교 위쪽 물 가운데 있었는데, 청계천을 덮으면서 장충단공원으로 옮겼다가 1973년에 지금의 자리로 가져왔다.

이 수표는 커다란 받침 위에 육각 기둥을 세우고 연꽃문양을 새긴 덮개를 얹은 구조이다. 기둥은 위로 갈수록 가늘고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육각의 면을 길게 잡아서 물살의 저항을 줄였다. 기둥에 10자까지 눈금을 파고 앞뒷면에는 숫자를 새겼는데, 눈금의 간격은 주척(周尺) 1자로 평균 21.5㎝이다. 수표교와 마주한 면에는 3자 6자 9자의 위치에 둥근 구멍을 파서 물의 높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구조는 간단하지만 치밀한 설계와 조형미를 갖춘 문화재이다.

영문

Water Gauge at Cheonggyecheon Stream, Seoul

This stone post was made to measure the depth of the water of Cheonggyecheon Stream and is presumed to date to the early 19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 water gauge made of wood was first installed in Cheonggyecheon Stream in 1441. However, as wood can easily rot if submerged in water for a long time, it was replaced with a stone post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r. 1469-1494).

This stone post originally stood in Cheonggyecheon Stream near today’s Eulji-ro area, but when construction to cover the stream and build an elevated highway began in 1958, the post was moved to Jangchungdan Park. It was moved again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73. This post consists of a base, a hexagonal pillar, and a capstone carved with a lotus design. The stone pillar is marked by horizontal lines from level 1 to level 10 at intervals of 21 cm. On the back of the pillar, a hole was made at levels 3, 6, and 9 to indicate drought, average level, and overflow.

영문 해설 내용

이 수표는 청계천의 수위를 재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조선시대인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441년 청계천에 목재로 만든 수표가 처음 설치되었다. 하지만 나무는 물에 오래 잠기게 되면 쉽게 썩기 때문에, 성종 대에 돌기둥 형태로 바꾸게 되었다.

이 수표는 원래 오늘날의 을지로 인근 청계천에 세웠으나,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장충단공원으로 옮겼다. 이후 1973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겼다. 받침, 육각 기둥, 연꽃 문양을 새긴 덮개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21cm 간격으로 1부터 10까지 눈금을 표시했다. 기둥 뒤쪽에는 3자, 6자, 9자 위치에 둥근 구멍을 파서 갈수, 평수, 대수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