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창호 묘소
서울 안창호 묘소 Tomb of Ahn Chang-ho, Seo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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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서울 안창호 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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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Ahn Chang-ho, Seoul |
한자 | 서울 安昌浩 墓所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649-9 (도산공원)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등록문화유산 |
지정(등록)일 | 2012년 10월 19일 |
분류 | 등록문화유산/기타/인물기념시설 |
소유자 | 강남구청 |
관리자 | 강남구청 |
시대 | 기타 |
수량/면적 | 현항측량면적 1,688㎡ |
웹사이트 | 서울 안창호 묘소,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선각자요, 지도자이다. 그는 1938년 3월 10일, 독립운동으로 인한 옥고 끝에 만 60세의 나이로 순국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1973년에 안창호 탄신 95주년을 기념하여 도산공원을 개장하면서 이곳에 그의 유해와 1969년에 미국에서 서거한 부인 이혜련의 유해를 함께 안장하였다.
개항 직후 평양 근교에서 농부 안흥국의 아들로 태어난 안창호는 ‘무실역행(務實力行)’과 ‘충의용감(忠義勇敢)’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거하기 전까지 정치, 사상, 경제, 언론, 교육,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안창호는 공립협회, 신민회,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독립당 등을 조직하였고 미주와 만주, 연해주, 중국 등지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실용적이며 민주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1920년대 중후반에는 독립운동계의 노선과 사상의 차이로 발생한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자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이처럼 안창호는 공익과 대의를 따르고 소통과 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하여 민족의 단결을 도모하였으며, 국민 국가 건설의 행보를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안창호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으며, 국가유산청은 2012년 10월 19일에 그의 묘소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영문
Tomb of Ahn Chang-ho, Seoul
This is the tomb of the independence activist, educator, and politician Ahn Chang-ho (1878-1938, pen name: Dosan).
Ahn Chang-ho was the third son of Ahn Heung-guk, a farmer in the outskirts of Pyeongyang. Having learned Chinese classics as a child, he went to Seoul in 1895 where he studied at a school founded by the American missionary Horace G. Underwood. This contact with Christianity, Western studies, and the global order opened his eyes to the importance of a Korean nationalist movement. Guided by the principles of “acting through true diligence” and “committing to fight for the right cause,” he went on to become a prominent figure in the realms of politics, ideology, economics, the press, education, and culture.
Ahn Chang-ho’s legacy i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can be characterized by his practical and democratic approach which was based on his experiences overseas, including his efforts to form several independence movement organizations in the United States and his work at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China. In the mid-to-late 1920s, he promoted the principle of emphasizing “personal sacrifice for the nation as the ultimate fulfillment of one’s purpose” to overcome the strategic and ideological differences within the independence movement circles. In his efforts to unite the nation and build the state, Ahn demonstrated great leadership, talent for communication, and immense perseverance.
Ahn Chang-ho’s independence movement activities led to his arrest by the Japanese authorities in 1937. He was released within six months, but died on March 10, 1938, due to multiple health complications stemming from his torture and life in prison. He was buried at Manguri Public Cemetery (today’s Mangu History and Culture Park). In 1973, on the anniversary of his 95th birthday, his body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the newly opened Dosan Park. During the relocation, the remains of his wife Yi Hye-ryeon, who had died in the U.S. in 1969, were buried together with his.
In recognition of his monumental legacy, Ahn Chang-ho was awarded the Republic of Korea Medal, the highest among the Orders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in 1962. In 2012, his tomb was listed as a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정치가였던 안창호(1878-1938, 호: 도산)의 묘소이다.
안창호는 평양 근교에 살던 농부 안흥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한학을 배웠고, 1895년 서울로 올라와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G. 언더우드가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이곳에서 기독교, 서양 학문, 세계 질서를 접한 안창호는 한국 민족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무실역행’과 ‘충의용감’의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 사상, 경제, 언론,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안창호는 세계 각지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한국 독립운동에서 실용적이고 민주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미국에서 여러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활동하였다. 1920년대 중후반에는 독립운동계의 노선과 사상의 차이로 발생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궁극적인 목적의 완성”이라는 대의를 강조하였다. 안창호는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서 뛰어난 지도력과 소통 능력을 발휘하며 끊임없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안창호는 독립운동 중 1937년 일본 당국에 체포되었고, 6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나 고문과 감옥 생활로 얻은 여러 질병으로 인해 1938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망우리 공동묘지(지금의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안장되었으며, 1973년 안창호 탄신 95주년을 맞아 새로 개장된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다. 이장 당시 1969년에 미국에서 서거한 부인 이혜련의 유해도 함께 안장되었다.
안창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고, 2012년 그의 묘소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