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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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eung-hyu in Dutasan Mountain, Samcheok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영문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eung-hyu in Dutasan Mountain, Samcheok
한자 三陟 頭陀山 李承休 遺蹟
주소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 (내미로리)
지정(등록) 종목 사적
지정(등록)일 2000년 9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시대 충렬왕13년(1287)
수량/면적 34,407㎡
웹사이트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2019

이곳은 고려 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인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집을 짓고 살던 터이다. 고려 충렬왕 13년(1287) 무렵 이승휴는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서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다.

이승휴는 어렵게 벼슬을 얻었으나 강직한 성품 탓에 여러 번 좌천되었다. 이에 어머니의 고향인 두타산 구동(龜洞)으로 돌아와 「제왕운기」, 「내전록」, 「동안거사집」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제왕운기」는 우리나라 역사와 중국 역사를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로,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고 계승 관계를 체계화한 귀중한 자료이다.

「동안거사집」을 보면 이승휴는 언덕 위에 용안당(容安堂)을 짓고 여기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용안당 남쪽에 우물을 만들어 표음정(瓢飮渟)이라고 불렀으며,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보광정(葆光亭)이라고 불렀다. 보광정 아래에는 연못을 만들어 지락당(知樂塘)이라고 불렀다. 이 내용은 1998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절터와 연못의 흔적, 청자 가마터 등이 나오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2024

이곳은 고려 시대의 관료, 문인, 역사가였던 이승휴가 고려 제25대 왕인 충렬왕에게 국왕이 고쳐야 할 폐단 10개 조를 올린 후 파직된 후 살았던 터이다. 이승휴는 이곳에서 두타산 자락인 구동(현재의 삼척시 천은사 경내)에 용안당(容安堂)을 세우고 약 10년간 삼화사(三和寺)에서 빌린 1,000상자의 불경을 읽으며 지냈다.

이곳에서 은거 중이었던 이승휴는 『제왕운기』, 『내전록』, 『동안거사집』 등의 책을 썼는데, 특히 충렬왕 13년(1287)에 저술한 『제왕운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함께 고려 시대에 편찬한 3대 사서(史書) 중 하나이다. 『제왕운기』는 우리나라 역사와 중국 역사를 구분하고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 형태로 서술한 책이다.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고 국가 계승 관계를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동안거사집』의 「보광정기」를 보면 이승휴는 언덕 위에 용안당을 짓고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용안당 남쪽에 우물을 만들어 표음정(瓢飮渟)이라고 불렀으며, 이 위에 정자를 짓고 보광정(葆光亭)이라고 불렀다. 보광정 아래에는 연못을 만들어 지락당(知樂塘)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내용은 1998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절터와 연못의 흔적, 청자 가마터 등이 나오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쓴 곳인 용안당이 현재의 천은사(天恩寺)이기에 1995년 천은사 안에 있는 지락당 터 옆에 이승휴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동안사(動安祠)를 건립하였다. 이후 매년 10월 3일 이곳에서 이승휴를 기리는 동안대제(動安大祭)를 지내고 있다.

영문

  •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eung-hyu in Dutasan Mountain, Samcheok

2019

This site was once occupied by the house where Yi Seung-hyu (1224-1300), a renowned scholar and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resided after resigning from office.

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1252, Yi served various posts in the royal court. However, he was dismissed and reinstated a number of times during a turbulent political period marked by the Mongol invasions. When he was dismissed due to his petition to admonish the king for mishandling state affairs, he came to this village near Dutasan Mountain, his mother’s hometown, where he wrote many books over the following ten years. Among them, Jewang ungi (Songs of Emperors and Kings) holds significance as a historical text representing a national identity in opposition to the Mongols.

According to his anthologies, there was once a house called Yongandang on top of the hill at this site, which was built by Yi to use as his residence. To the south of the house were a well and a pond with a pavilion. Later, he donated the building of Yongandang to a nearby Buddhist temple, which is now called Cheoneunsa.

In 1995, Dongansa Shrine was built in honor of Yi Seung-hyu inside the temple complex.

2024

This site, located in the vicinity of Cheoneunsa Temple on Dutasan Mountain, was the residence of the renowned civil official and historian Yi Seung-hyu (1224-1300). Yi, who served in the royal court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during the aftermath of the Mongol invasions, lived here for ten years after being dismissed from office in 1280 for submitting a ten-point petition admonishing King Chungnyeol for his mishandling of state affairs and critiquing the abuses of power committed by the king’s inner circle. According to Yi’s writings, and later confirmed through excavations conducted in 1998, Yi built a hermitage, a pavilion, and a pond at this place, which is located near his mother’s hometown.

During his time here, Yi Seung-hyu read a thousand cases worth of Buddhist scriptures borrowed from a nearby temple and composed numerous literary works, including his acclaimed historical poem, Songs of Emperors and Kings (Jewang ungi), in 1287. Consisting of two volumes that include both seven-character and five-character verse outlining Chinese and Korean history, Songs of Emperors and Kings holds historical significance in its systematization of the succession of Korean states and its representation of a Korean national identity. The work is considered one of the three classic histories from the Goryeo period, along with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1145) and the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1281).

The current Cheoneunsa Temple complex was constructed the 1970s after having been destroyed by a fire in 1948 and the Korean War in 1950-1953. In 1995, Dongansa Shrine was built at the site to commemorate Yi Seung-hyu and serve as a venue for veneration rituals held each year on National Foundation Day (October 3).

영문 해설 내용

2019

고려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인 이승휴(1224-1300)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집을 짓고 살던 터이다.

이승휴는 125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280년 국왕의 실정을 간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고, 어머니의 고향인 두타산으로 들어와 약 10여 년 간 머물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승휴는 여러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1287년에 지은 『제왕운기』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읊은 서사시로, 한국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승휴가 남긴 문집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곳 언덕 위에 용안당을 짓고 여기서 생활하였다. 용안당 남쪽에는 우물과 정자가 있었고, 정자 아래에는 연못도 조성되어 있었다. 이후 이승휴는 용안당을 인근의 사찰에 시주하였는데, 그 절은 현재의 천은사이다.

1995년에는 천은사 경내에 이승휴의 사당인 동안사가 건립되었다.

2024

두타산 천은사 인근에 자리한 이곳은 문신이자 역사가인 이승휴(1224-1300)이 살았던 곳이다. 몽골 침략 이후 고려 왕실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했던 이승휴는 1280년 충렬왕에게 국왕의 실정을 경고하고 측근 인물들의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10개조의 간언을 올렸다가 파직되었고, 이후 이곳에서 10여 년간 지냈다. 이승휴의 저술과 1998년에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승휴는 어머니의 고향 근처인 이곳에 집, 정자, 연못을 지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승휴는 인근 사찰에서 빌린 불경 천 상자를 읽으며 여러 저술을 남겼다. 특히 두 권으로 구성된 『제왕운기(1287)』는 칠언시와 오언시 형식을 사용하여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으며, 한국 왕조의 계승 관계를 체계화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밝혔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이 저서는 『삼국사기』(1145), 『삼국유사』(1281)와 함께 고려시대의 3대 역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의 천은사는 1948년의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후 1970년대에 재건되었다. 1995년에는 이승휴의 사당인 동안사가 이곳에 건립되었고, 매년 개천절(10월 3일)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갤러리

주석

  1. “039. 삼척 천은사 이승휴 유허지”, 『건축유적 발굴조사 자료집 - 사찰편II (강원, 경북, 경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19쪽. https://www.khs.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18178&bbsId=BBSMSTR_1021&mn=NS_03_08_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