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우당 터
삼우당 터 Samudang Pavilion Si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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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삼우당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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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amudang Pavilion Site |
한자 | 三友堂 터 |
지정(등록) 종목 | 진안군 향토문화유산(기념물) |
해설문
국문
삼우당은 구한말의 애국지사 최제학이 스승 최익현을 모시고 태인의병(병오창의) 거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삼우당이란 이름은 최제학의 부친 삼형제(성호, 익호, 명호)가 아주 우애 좋게 살았다고 하여 붙여졌다.
삼우당 누각이 있던 뒤쪽 바위에 ‘삼우당(三友堂)’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삼우당 터에는 1919년에 세웠다는 삼우동비(三友洞碑)가 있다. 비 앞면에는 ‘삼우동(三友洞)’이라 새겨 있고 뒷면에는 ‘우당팔경(友堂八景)’이 적혀 있다. 그리고 삼우동비 뒤쪽에는 ‘애국지사 습재 최제학 선생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 삼우당은 남아 있지 않지만 삼우당 터는 구한말 진안의 항일투쟁사와 독립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긴 역사 현장이자 문화유산이다.
- 최익현: 구한말의 의병장, 위정척사운동에 앞장선 유학자
- 태인의병(병오창의): 1906년 정읍 태인에서 일어난 항일 의병 운동
- 우당팔경(友堂八景)
- 봉포유운(鳳浦流雲): 봉황산 아래 나루에 하얀 구름처럼 떠오르는 물안개
- 난산낙조(卵山落照): 알미산에 비치는 찬란한 석양 노을
- 주소귀범(舟沼歸帆): 주소에서 노닐다가 선창으로 돌아오는 배
- 유천어화(柳川魚火): 지동 앞 유천에서 횃불을 밝히고 고기 잡는 광경
- 목동초가(木洞草歌): 목동의 초동들이 즐겨 부르던 흥겨운 노래 가락
- 지곡모연(芝谷暮煙): 지곡마을 저녁 밥 지을 때 피어오르는 연기
- 선대명월(仙坮明月): 달밝골에 아름답게 떠오르는 보름달
- 인봉적설(麟峰積說): 성수산에 하얗게 쌓인 눈
영문
Samudang Pavilion Site
Samudang Pavilion was used by Choe Je-hak (1882-1959), a Confucian scholar and prominent figure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his teacher Choe Ik-hyeon (1833-1906) to mobilize a civilian army in the years prior to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name Samudang, meaning “Pavilion of the Three Friends,” refers to the friendship among three brothers, namely Choe Je-hak’s father Choe Seong-ho and his two uncles.
When Korea lost its sovereignty through the Japan-Korea Protectorate Treaty of 1905, Choe Je-hak and Choe Ik-hyeon decided to lead a civilian army to fight for Korea’s independence. They took up arms in 1906 in Jeongeup but were suppressed by Japanese troops. Choe Ik-hyeon was exiled to Tsushima Island where he soon died, while Choe Je-hak tried again to raise a civilian army but was unsuccessful and went to live a life of seclusion in Jinan and Hadong.
The stone monument marking the pavilion’s site is said to have been installed in 1919. Behind this is a stele erected in 1988 to honor Choe Je-hak. The large boulder behind the pavilion site is inscribed with the pavilion’s name.
영문 해설 내용
삼우당은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최제학(1882-1959)이 스승인 최익현(1833-1906)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준비를 하던 곳이다. 삼우당이라는 이름은 최제학의 아버지인 최성호가 두 동생과 아주 우애 좋게 살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최제학과 최익현은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뜻을 함께한 이들과 1906년 정읍에서 모여 의병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고, 최익현은 대마도에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최제학은 다시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이어가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진안과 하동 등에서 은둔하였다.
현재 삼우당 터에는 1919년에 세웠다고 전하는 비석이 있고, 비석 뒤쪽에는 최제학을 기리기 위해 1988년에 세운 비석이 있다. 삼우당 터 뒤쪽 바위에는 ‘삼우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삼우당이 언제 지어졌고 언제 없어졌는지에 대한 정보는 확인되지 않음.
참고자료
- 최제학, 디지털진안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jinan.grandculture.net/jinan/toc/GC05801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