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진양강씨 정려각
산청 진양강씨 정려각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Kang, Sanch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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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산청 진양강씨 정려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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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Kang, Sancheong |
한자 | 山淸 晉陽姜氏 旌閭閣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 719-2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43호 |
지정(등록)일 | 2008년 2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1동/139㎡ |
웹사이트 | 산청 진양강씨 정려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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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정려각(旌閭閣)은 충신·효자·열녀 등의 업적을 표창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산청 진양 강씨 정려각*은 정유재란(1597) 때 왜적에 맞선 권택(權澤)의 아내 진양 강씨의 절개와 의리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 조선 선조 34년(1601) 배양마을 앞에 세웠다가 조선 숙종 14년(1688) 지금의 위치로 옮겼는데, 중앙에는 ‘선무랑권택처절부진양강씨지려(宣務郞權澤妻節婦晋陽姜氏之閭)’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건물은 앞면 1칸, 옆면 1칸으로 여러 재료들을 단단하게 연결하여 일반적인 전각 구성 형식을 따르고 있다. 지붕 아래 목재 구조물에는 연꽃과 봉황의 머리를 새겨 넣어 화려하게 장식하여 조선시대 정려각의 건축형식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Kang, Sancheong
This pavilion houses a plaque and stele to commemorate the matrimonial devotion of Lady Kang, the wife of Gwon Taek.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 pavilions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Lady Kang belonged to the Jinyang Kang cla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Japanese troops who had invaded the village tried to rape Lady Kang. She fought back but ultimately committed suicide to protect her chastity and remain faithful to her husband.
In 1601, a commemoration was posthumously bestowed in recognition of Lady Kang’s honorable deed. A pavilion to house the commemorative plaque and stele was built in front of today’s Baeyang Village in Sawol-ri bu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688. The pavilion has intricate brackets below the roof that are elaborately decorated with lotuses and phoenixes.
Inside the pavilion, there are a plaque and stele bearing the words: “Commemoration to Lady Kang for Her Matrimonial Devotion as the Wife of Gwon Taek."
영문 해설 내용
이 정려각은 권택의 부인 강씨의 절의를 기리는 정려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보호했다.
강씨 부인은 진양강씨로. 1597년 정유재란 때 마을에 쳐들어온 왜적이 강씨를 범하려 하자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자결하여 절의를 지켰다.
1601년 강씨의 절의를 기리는 정려가 내려지고, 지금의 사월리 배양마을 앞에 정려각이 세워졌다. 1688년 정려각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지붕을 받친 공포는 연꽃 봉오리와 봉황 머리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정려각 안에는 정려와 '권택의 처 절부 강씨의 정려'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참고자료
- "진양강씨 정려문", 안동권문, 권도한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