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용강정사, 임리정
용강정사, 임리정 Yonggangjeongsa Hall and Imnijeong Pavilion, Sanch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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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용강정사, 임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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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Yonggangjeongsa Hall and Imnijeong Pavilion, Sancheong |
한자 | 山淸 龍岡精舍, 臨履亭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신차로 231-5 (신안면)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238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1월 3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
수량/면적 | 2동/1,838㎡ |
웹사이트 | "산청 용강정사, 임리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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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후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유림*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 일명 ‘파리장서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산청 용강정사와 임리정은 독립을 원하는 유림들이 모여 뜻을 모으고 파리장서를 준비한 의미 있는 장소이다.
용강정사는 앞면 4칸, 옆면 1칸 반 건물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임리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용강정사는 건축의 짜임새 및 구조 상태가 우수하며, 임리정은 주변 경관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 유림 :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조선시대 선비
영문
Yonggangjeongsa Hall and Imnijeong Pavilion, Sancheong
Yonggangjeongsa Hall and Imnijeong Pavilion were built around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They were originally built as a study spaces for the descendants of the Gimhae Heo Clan.
In 1919, right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took place, Confucian scholars nationwide planned to submit a petition to the Paris Peace Conference for Korea’s independence from imperial Japan's rule (1910-1945). Drafts for the petition were drawn up by groups from various regions. Scholars in this area also came together in these buildings to prepare a draft. The final petition was sent to the conference but failed to attract international support.
영문 해설 내용
용강정사와 임리정은 일제강점기에 김해허씨 문중에서 지은 건물들이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난 후 유림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제출하기로 하였다. 각 지역의 유림들은 파일에 보낼 서한을 준비하였고, 이 지역의 유림들 역시 용강정사와 임리정에 모여 이러한 노력에 참여하였다. 전국의 유림들이 뜻을 모은 이 서한은 파리로 보내졌으나, 국제사회의 관심을 크게 받지는 못하였다.